아직 법적 공방이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조합원의 과반수가 참석해 임총이라는 형식을 갖춰 이사장 해임을 통과시킴으로서 해를 넘게 끌어온 전기조합 사태는 전환점을 맞았다.

작년 정기총회에서 대의원제 채택으로 불거진 이번 사태는 나무가 가지를 뻗듯 많은 화제거리를 만들어 내면서 결국 조합원들 스스로가 임시총회를 소집해 자신들의 수장을 해임하는 일대 사건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현장스케치

19일 김포공항 컨벤션센터는 개회시간을 1시간 정도 앞두고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주변에선 성원이 될 것인가에 대한 설왕설래가 오갔고, 주된 분위기는 “조합측의 방해가 심해 어렵지 않겠냐”는 쪽이 우세한 편이었다. 꾸준히 회원들이 입장하면서 양규현 조합원 대표와 원일식 전발모 회장의 얼굴이 펴질 때 고엽제 전우회 승합차량 여러 대가 도착하면서 일촉즉발의 긴장이 시작됐고, 이들의 총회장 진입이 주최측이 고용한 사설 경호원들에게 제지되면서 고성과 육두문자가 오고 갔다.

약 20분 후 고엽제 전우회 대표 3명의 입장이 허용되면서 상황은 정리됐다. 오후 2시 개최 시간이 됐지만 총회는 시작되지 않았다. 아직 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것. 시간이 지날수록 주최측은 바빠졌고, 컨벤션센터 서관에 참관인 자격으로 와 있던 25명의 전화협 소속 회원과의 협상이 시작됐다.

전화협측은 참관만 할 것이므로, 정족수에 포함시키지 말라고 주장했고, 주최측은 참관을 하더라도, 참석자명단에 서명을 할 것을 요구해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

2시 55분, 사회를 맡은 원일식 전발모 회장은 “1호 의안에 대한 정족수는 이미 넘었으나, 2호 의안에 대한 정족수가 모자르니 조금만 더 기다리겠다”며 참가자들의 양해를 구했다.

총회 유회가 조심스럽게 예측되는 가운데, 오후 3시 역시 원일식 회장이 총회를 개회했다. 이어진 성원보고에서 본인참석 369, 대리 19, 서면결의 50, 총참가자 438명이라고 보고되며 총회는 성회됐다.

2호 의안을 승인할 수 있는 본인참석 인원 367명에서 단 2명이 넘는 아슬아슬한 인원이었다. 그러나 참가자 수를 눈대중으로 세어본 일부에서는 “숫자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속삭임도 있었다.

2호 의안 처리가 기립으로 승인되면서 참석자들의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기권을 제외한 반대가 한명도 없는 사실상의 만장일치로 이사장 해임이 결정되자 여기저기서 술렁임이 일었고, 1호 의안 처리까지 끝내 대의원제가 폐지되고, 조합이 정상화될 때까지 이사장의 업무를 대행하며 이사장측의 반격에 맞설 비대위를 출범시키면서 전기조합 사상 초유의 조합원 주최의 임시총회는 끝을 냈다.

이후 이어진 만찬에서 참석자들은 큰 일을 해냈다는 안도감과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결의를 다시 한번 다졌다.


향후 전망

임시총회 주최측은 총회 녹취록과 속기록 등 관계 자료를 중기청, 기협중앙회 등에 제출해 승인을 받을 예정이다. 상급기관에서 이날의 임총을 승인해준다면 이후 예상되는 법적인 공방에서 결정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또한 이사장이 임총 결과에 따르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업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금명간 법원에 신청할 예정이다.

이제 문제의 핵심은 이사장이 소집해 유회된 3일 임총과, 양규현 임총소집청구인 대표가 소집해 성회된 19일 총회 중 어느 것이 적법한가에 달려있게 됐다. 그러나 이는 관련법규와 정관상의 ‘소집’이라는 용어의 해석이 첨예하게 대치돼 결국 법원의 판결을 필요로 할 전망이다.

이병설 이사장은 자신의 입장을 직접 표명하진 않았지만, 조합 집행부의 발표와 3일 임총을 마치고 회원사들에게 보낸 문건에서 3일 임총의 적법성과 19일 임총의 불법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중간세력을 자처하며 조합화합을 강조한 전화협도 3일 임총의 적법성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한편 19일 임시총회를 주도한 전정협과 전발모는 반대로 19일 임총의 적법성을 주장한다. ‘비대위’라는 임시기구까지 만들어 이사장의 업무와 권한을 대행하고, 이병설 이사장측과의 법적 공방을 대비하고 있다.

이제 공은 사법부로 넘어갔다. 양측 모두 설득력 있는 근거를 들어 자신들의 적법성을 주장하는 가운데 최종 법적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조합의 파행 운영이 가장 우려되고 있다.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마주 달려오는 기관차는 결국 충돌하기 마련이다. 법적 공방을 떠나 조합을 정상화하기 위한 운용의 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200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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