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
전압은 조금 낮았지만 부재가 강관형이고 선종·조수 등이 우리보다 컸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철탑 높이나 하중 등이 비슷한 결과가 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현장에 가다보면 산등성이에 철탑이 일렬로 쭉 늘어선 곳도 더러 있었는데 일본도 민원은 많지만 서로 간 충분한 협의로 합리적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것 같았고 다만 우리 같이 지역 협력 사업 등은 없는 것 같았다.

이는 충분한 공사기간을 가지고 용지 협의를 하기 때문으로 생각되었다.
나고야에 있는 NGK 공장을 방문해 보니 이 역시 일본 특유의 품질 관리에 온 신경을 쓰는 것 같았으며 세계적 애자 메이커이긴 하지만 오래된 메이커이기 때문에 시설 전체는 약간 노후 된 듯 보였으나 설비의 관리를 철저히 하여 전체적으로 깨끗한 인상을 받았다.
서서히 애자 사업의 사양화에 대비, 특수물질 개발 등으로 다음 사업에 대비하고 있었다.
8~9일 정도의 일본 방문으로 설비의 건설현장을 직접 봤기 때문에 개념 정립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1995년에는 설계도 완료되어 1995년 10월경에는 공사 발주도 하게 되었고 공사의 중요성을 고려, 송변전 시설 건설 공사에 처음으로 감리제도를 도입토록 사장님께 보고 품의를 득하였다.
또한 공사 수행의 어려움과 위험에 대비 보험제도를 설계에 반영 조치하였다.

지금까지 송전선로 공사에 보험 가입은 없었으며 보험료가 20~30억원 수준이 되었으므로 사내에서 낭비라는 지적도 있었으나 처음 시행하는 대형 건설 사업이므로 보험 가입은 필수로 판단하여 이를 추진 시행하였다.
공사 참여 자격도 엄격하고 신중히 검토하여 우선 345kV 4회선 건설 실적이 있는 업체로 한정 PQ 기준을 만들어 시행하게 되었다.
처음하는 사업이라 관련자 모두가 깊이 검토하고 논의를 하였으며 업계에서도 사업 참여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였다.

일본의 구간 분할을 충분히 검토 우리도 20~30km를 한 구간으로 사업을 소구간으로 분할 발주하여 능력이 있는 업체는 가급적 다수가 참여 할 수 있도록 하였다.
2개 업체 이상 컨소시엄을 구성 참여할 수 있는 길도 터놓아 견실한 중견 업체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김태성 씨가 건설실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송전 전문가로서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나는 송전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합리적 제도 시행에 차질 없도록 모든 힘을 다하였다. 물론 건설처의 의견을 수렴함도 잊지 않았다.
역시 세월은 무서웠다. 여러 사람이 한 가지 목표를 향하여 서로 협의하고 토론하고 노력한 결과 많은 실적을 잉태하였으며 또한 모든 일들이 큰 차질 없이 추진되어 이제 설계가 완료되어 착공을 바라보게 되었으니 추진반장으로서 감회가 무량하였으며 관련자 여러분들께 정말 감사하고픈 마음뿐이었다.

국가적 대역사(大役事)요, 동양 아니 세계에서 765kV 시스템의 2회선 One tower 송전선 건설은 처음이었기에 책임감과 사명감 하나로 일하고 또 일하였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계획 검토에서 착공까지 4년은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기간이었다.
또한 1996년 초 착공에서 1998년 말 준공이란 실공사기간이 3년인데 처음 시공하는 대형 공사에다가 수많은 민원이 제기될 것인데 과연 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인 특유의 돌파력으로 밀어나간다면 가능하리라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공사의 품질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큰 프로젝트인 만큼 이 부분 크게 염려되었다.

그러나 사업의 추진반장으로서 불가능하다는 생각보다 가능해 질 수 있도록 생각하고 모든 것을 챙기는 독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또 그리되도록 노력 또 노력하였다.

효과적인 용지 확보 방안으로서 별도 업체에 용역 처리하거나 공사업체에 일괄 도급하는 방안도 생각해 봤지만 민원 발생시 이의 설득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추진이 어려워 포기하고 모든 용지원들이 발로 뛰고 지역협력 사업을 적극 시행하고 Route 선정을 애당초 민원이 최소화 되도록 사전 검토를 철저히 해 나가도록 조처하였다.

1995년은 1996년 착공을 앞두고 여러 가지로 바쁜 한 해였다.
세부 설계를 위한 공량 확정뿐만 아니라 기술 기준의 확정, 공사발주 방법, 감리 방법, 기타 공사시행을 위한 공법 등 정말 다양한 문제가 있었다.
미국, 캐나다, 남아공, 일본 등을 연수하거나 출장으로 현지 확인을 거치고 각종 자료집이나 서적 등을 통하여 하나하나 문제를 풀어갔다. 기술연구원의 시험선로 건설 등 연구결과도 큰 도움이 되었다.

건설처의 건설을 직접 담당할 간부나 직원들의 인선도 다른 것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였다.
새로운 사업을 해 보겠다는 열정과 기술적인 높은 안목을 구비한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전국을 망라한 인재 풀(Pool)에서 최고의 사람들을 뽑아 왔다.
역시 30년이 넘는 한전의 저력은 크다는 것을 인재를 모으고 사업을 추진하는 곳곳에서 느꼈다.
철탑의 세부 설계와 애자의 선택, 개수 선정도 사실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중지를 모아서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1996년 착공을 위한 모든 일들이 거의 끝나갈 무렵 1995년 12월의 승진 인사에서 이런 저런 것들이 감안되었던지 나에게도 행운이 돌아와 드디어 1직급으로 승진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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