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

1996년 1월 초 드디어 김세일 처장의 뒤를 이어 765kV건설처장으로 임명받았다. 사업 추진반장을 했으니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임명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열심히 해서 765kV 건설사업을 성공리에 추진해 보겠다는 의지가 가슴속에서 불타오름도 부인할 수 없었다.
1996년은 바로 선로 건설사업이 착공될 예정이었으므로 양 건설소도 정식 발족되었다. 나로서는 양대 사업을 현장에서 직접 이끌어 갈 건설소장의 인선이 초미의 관심사이었다.
그래서 박태수 전무께 정식으로 사람을 추천 인선을 부탁하였다.
비록 변전 전문가이지만 정은헌 본사 변전부장(승진예정자)과 송전 전문가인 전복현 수원전력관리처 부처장 두 분을 발령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박태수 전무의 의견은 정은헌 씨는 변전 전문가인데 좀 곤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었으나 그의 사업 추진력(1994~1995년 하기 대비 공급력 확보를 위한 변전소 M.TR 신증설 공사 추진이라는 비상시기에 보여준 능력)을 적극 홍보한 김태성 건설실장과 나의 의견을 잘 들어 주셨다.
이런 정 소장의 추진력은 그 후 사업 추진 과정에서 여실히 나타났으며 1996년 5월 기공식 행사와 1996년 말 최초의 765kV 철탑 조립을 성공리에 시행함으로써 증명되었다.
1996년 초는 정말 어수선함 속에서 개시되었다. 나 자신 765kV 사업을 그동안 준비해 왔으나 처장으로 발령받아 하나하나 챙기고 사업을 시작해야 하는 시기였고 양 건설소장을 위시한 간부들이 발령을 받았으나 아직 사옥이 마련되지 않아 을지로 건설처에 모여서 발족을 준비하느라, 사업 내용을 파악하느라 매일매일이 시장터를 방불케 하였다.
양 건설소의 사옥을 확보함도 우선 어려운 일중의 하나였다.
그래도 1995년에 예비 Study를 해 놓았고 후보지를 몇 군데 검토해 놓았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1개월간의 노력 끝에 중부건설소는 천안전력소의 2층에 자리하였고, 동부건설소는 원주전력소의 휴지 부지에 별도 임시 사옥을 짓기로 하고 우선 콘센트를 몇 개동 가설치하여 현장 근무를 시작토록 조치하였다.
중부건설소장으로는 정은헌 씨가, 동부건설소장으로는 전복현 씨가 각각 발령되었다.
당진T/P~신안성S/S 간 T/L은 그 경과지가 산악이 비교적 낮고 평탄한 편이고 신태백S/S~신가평S/S 간 T/L은 태백 준령을 넘어오는 난공사였기에 송전 전문가인 전복현 씨를 동부건설소장으로 발령한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나는 우선 최대의 건설사업을 적기에 또 최상의 품질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건설처 및 건설소의 전 간부와 직원에게 몇 가지 사업 추진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말하자면 철학의 제시였다.
단순한 의례적 부탁의 말씀이 아니라 앞으로의 大건설사업을 추진해 나갈 핵심 철학의 제시, 쉽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몇 가지 제시한 걸 생각해 보면 ‘사업 투명성의 확보’, ‘강인한 사업의 추진력’, ‘철저한 공사 및 품질의 관리’ 및 ‘적극적이고 즐거운 삶의 태도’ 등을 이야기 하였다.
특히 추진력과 철저한 관리는 서로 상반되는 업무 성격일 것이므로 동료간, 상하간 팀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부탁하였다.
한국 초유의 최대 사업을 성실히 수행해 가기 위해서는 사업 투명성의 확보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였고 이 모든 일들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기 자신의 적극적이고 즐거운 삶의 태도가 바탕이 된다고 보았기에 특별히 이야기 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1996년은 사업을 착수한 해였기 때문에 더 없이 바쁜 한 해였다.
1996년 1월 건설처장으로 발령받아 2월 양 건설소를 발족시켰고, 역시 2월에는 전년도 말에 발주하였던 사업이 16개 업체에 분할 낙찰되었다.
현대, 삼성, 대우 등 그 때로서는 기라성 같은 업체가 낙찰되었는데 대개 2개 업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낙찰 받았다.
대개 1개 구간이 30km 정도로 340km가 10개 구간으로 나누어졌었고 큰 업체는 단독으로 중견업체들은 2개 조인트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업체끼리 약간 과당 경쟁한 관계로 낙찰률이 대개 70% 정도 되었다. 한전으로서는 금액이 절약되었지만 공사를 추진하는 주관 부서의 장으로서는 꼭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적어도 80~85% 수준은 되어야 새로운 사업에 대한 리스크도 감당하고 또 新장비를 확보해야 하는 부담을 고려하고, 무엇보다도 고 품질 공사가 되려면 적정가의 수주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모르긴 해도 앞으로의 국내 전력사업 공사를 물론이고 해외 진출시 765kV T/L 건설사업 수주 및 수행 실적이 절대적이니만큼 이에 대한 고려 차원에서 일차 수주함이 절대적이었고 경제성은 그 다음 차원이 아니었나 생각되었다.
여하튼 1996년 2월경 각 공구별로 실질적 착공식을 가지고 여러 가지 인허가, 장비 준비, 현장사무소 공간 및 건물 건조 등 업체로서는 무척 바빴고 우리 건설처도 업체와의 간담회 등 우선 업체를 리드하기 위한 업무가 많았다. 서로가 처음의 사업이니 그 어려움은 오죽했으랴.
또한 감리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하였기 때문에 이 또한 크나큰 업무였다. 원칙은 감리업체를 먼저 선정한 후 공사 발주를 하여야 하나 준비 관계로 업체를 먼저 선정하고 감리업체를 후에 선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감리 용역을 위한 설계도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감리비 계산 기준이 나와는 있었으나 자재비에 따른 감리비 계상(기본 비용으로)이 좀 문제가 되었다.
도급 자재는 문제가 없으나 사급 자재비의 계상은 그 금액도 크고 이의 계상 여부가 전체 감리비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충분한 고려를 요하는 사항이었다.
도리 없이 본사를 거쳐 정부의 건설부로 질의하기에 이르렀으나 시원한 대답이 없이 규정에 따라 시행하라는 답변뿐이었다.
시간은 촉박하고 도리 없이 규정 해석을 엄정하게 실시 설계토록 조처하였으나 결국은 감리대가 산정이 불합리 하였다는 감사원의 지적이 있었다.
나중의 책임을 면하려면 무조건 최저의 경우로 해석 조치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무책임일뿐더러 일이 추진되지 않을 테니 이 또한 문제가 될 것이었다.
정부에서도 확실한 방향 없는 면피성 답변뿐이니 우선 급한 것은 직접 사업을 추진하는 현장사업소 뿐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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