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전기기 업계에 큰 변화 가져와”

<지난호에 이어>

1997년은 건설사업이 어느 정도 물이 오른 한 해였다.

지난 한 해는 여러 가지 면에서 노하우가 쌓여서 우리 직원, 건설사 직원, 감리사 직원까지 모두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 같았다.

1996년 말 첫 조립한 철탑은 여기저기에서 조립되기 시작했으며 민원도 계속 일고 있었지만 각 지역별 담당자들이 열심히 설득하고 또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여 큰 무리가 없을 때는 이를 수용해 주었으며 무엇보다도 필요시 적극적인 지역 협력 사업을 시행함으로써 대부분의 민원을 잘 처리 할 수 있었다.

건설사업이 본격화 되면서 여기저기서 구경 오는 사람도 많았고 관련자들의 방문 등에 따른 불가피한 비용 등도 무시할 수 없어 업체에는 조금 부담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현장 방문 등에 따른 식사·숙박비 등 업체의 부담이 될 만한 부분을 줄여주기 위해 나부터 절대 현장에서 숙박치 않았고 전 간부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숙박치 않도록 하였다.

물론 서울에서 지리적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도 있었지만 이를 전 간부가 솔선해 보임으로써 현장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조리를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2개월에 한 번씩 서울에서 공정회의를 할 때도 비용을 정식으로 전불(前拂)하여 현장에서 출장 오는 사람의 부담을 덜어 주도록 노력했다. 물론 현장에 가서 하는 현장 회의도 가급적 전불 처리하여 현장 부담이 없도록 조처하였다. 부수적인 분위기를 정갈히 함으로써 공사 추진에 조그만 장애라도 생기지 않도록 조처하였다.

일본의 마쓰시다 기업 회장은 오죽하면 ‘청소를 잘 하자’는 기업훈을 남겼을까.

1997년 들어 공사 추진이 많이 됨에 따라 일본 동경전력의 용역원들의 의견도 사업추진이 순조롭게 또 건실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하였고 이제 각 공사현장도 모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나도 1개월에 1회 꼴 정도로 현장을 방문 격려해주고 또 문제점과 애로사항을 청취 이를 해결키 위해 노력하였다. 사업이 본 궤도에 오름에 따라 도리어 철탑 등 일부자재가 달리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철탑 부재는 고가이므로 불필요하게 조기납품 받아 쌓아두면 그것 또한 큰 손실이므로 철탑 납품에 관한 플랜을 세워 이를 경제적이면서도 사업도 최적 조건하에서 추진되도록 그 당시 송전부장이던 김신철 부장이 주도하여 면밀한 계획을 수립 시행하는 등 대단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였다.

고가의 철탑 부재의 합리적 수급으로 효율적 공사 추진은 물론 자재·공사업체·한전 공히 경제적 이득 또한 꽤 컸으리라 생각 되었다.

대형 사업을 수행할 때에는 품질관리 못지않게 공사 및 공정관리의 중요함도 보여주는 사례라 판단되었다. 관계자 모두가 열심히 한 덕분인지 크나큰 사업을 하면서도 현장에서 발생된 안전사고가 거의 없었다.

산간벽지에 진입도로를 10톤 트럭들이 거대 철탑 부재를 적재하고 수시로 드나 들었고 철탑 조립을 하기 위한 고소 작업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관리 진행되었다.

불행하게도 1997년 말 철탑조립을 지휘하던 업체 측 안전원이 철탑 부재 인양시 적정거리를 이격하여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바로 직하에서 조작하다가 실수로 엉뚱한 안전사고가 난 것이 최초의 사고였었다.

어떤 민원 현장(가평지역)에서는 우리 작업 장비를 이동치 못하도록 도로를 폐쇄(구덩이를 파서)한 일도 있어 바로 경찰서에 고발토록 했으나 도리어 경찰서에서 민원인을 달래어 원만히 해결한 일도 있었다.

실제 민원 해결 방법은 강온을 적절히 배합해 시행함이 이상적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기본 바탕은 사업 추진시 발생되는 민원을 대립적 관점이 아니라 호혜적 해결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사업을 추진하고 건설사업을 진행 중인 때에도 여러 가지 기술적으로 원칙을 확정해야 할 일이 많았다.

800kV 사업은 국내 중전기기 업계에도 크나큰 변화와 업그레이드를 가져오는 계기가 된 것으로 판단되었다. 우선 800kV 변압기와 GIS를 국내 개발키로 하여 메이커, KERI, 한전 등이 주축이 되어 준비, 검토를 추진했으며 현대와 효성 중전기 양대 메이커가 그 동안의 345kV 생산 실적을 바탕삼아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으며, 금구류 메이커, 건설장비 메이커 등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초반 유럽의 시멘스에서 초고압기기 도입에 따른 기술 연수시 습득한 기술적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한 국가가 계통 전압을 업그레이드 할 때는 대개 기존 전압의 2배 수준에서 정한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상당히 타당성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송전 용량 증대가 5배 수준으로 늘어나고 기술 개발 능력이나 경제성 등을 고려하면 2배 수준의 전압이 가장 타당성 있는 것 같았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154kV에서 345kV로 시스템 전압을 올렸고 다시 765kV로 격상, 대략 2배 수준이 되었는데 타당한 결정이었던 것 같았다.

765kV 시스템 전압 결정 당시 500kV냐 1,000kV냐 등 여러 가지 전압을 검토하였는데 결국 시스템 최고 전압을 800kV로 결정한 것은 잘 된 일 같았다. 국내 기술 수준으로 보더라도 345kV 추진 실적과 기술수준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기개발은 765kV급이 온당한 것 같았다.

관련 기술진들이 외국의 연구와 또 외국기술회사와 기술제휴나 또 기술진을 모셔 와서 기기 개발에 최선을 다하였다. 800kV 국내 기기 개발이나 장비개발 및 공사 실적 등이 쌓여서 금후 아시아와 중국 등 외국의 사업 진출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강관 철탑만 해도 765kV에서 채택된 형식이 345kV급에서 특수 개소 등에 많은 곳에 활용되어 나갔고 외국 수출에도 상당히 도움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800kV급 기기 생산 능력은 세계에서도 그리 많이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력 시설 분야에서 이제 국내의 기기 생산과 건설 능력 및 관련 장비 생산 분야까지 과히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는데 이는 오로지 800kV 시스템 건설로 유발된 영향이라 확신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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