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확산으로 성 개방 풍조 급격히 확산 / 스스로 최소한의 도덕률 정해야… 반론도 거세

개방과 개혁의 물결이 온 사회를 강타하다 보니 당연히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인 性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인터넷이 자리잡고 있고, 그 변화의 현상으로는 여성의 대담한 적극성이 눈에 띈다.


인터넷의 보급은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들었다. 특히 성적인 것에서의 그 파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청계천이나 뒷골목에서 은밀히 거래되던 포르노그래피 비디오는 클릭 몇 번만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한 예로 큰 화제가 됐던 O양 비디오는 중년 남성을 인터넷문화에 익숙하게 해 준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포르노그래피에 익숙해진 네티즌은 동영상이나 사진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게 되자, 스스로 파트너를 찾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초기의 이러한 시도는 금방 벽에 부딪쳤다. 그 이유는 네티즌의 성비가 절대적으로 맞지 않았던 것. 인터넷 채팅 사이트마다 하룻밤을 즐기려하는 수많은 늑대들이 얼마 되지 않는 여우들의 맘을 끌기 위해 돈 자랑, 힘 자랑을 하는 별로 웃기지도 않은 광경들이 펼쳐지게 된 것도 다 성비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란 모자란 부분은 반드시 채워지는 법. 여성들이 인터넷에 익숙해지고, 섹스라는 것이 그리 몹쓸 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린 이 나라의 여성들은 용감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여성들이 섹스에 익숙해진 데는 이른바 여성 전용 사이트들이 한 몫 단단히 했다. 여자가 셋이 모이면 그릇이 깨진다고 했던가. 역시 이름 모르고, 얼굴 모르는 여성들이 모여 이야기 하다보니 섹스를 원하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그리 극소수는 아니었던 것이었다. 또한 분위기가 그렇게 흐르다 보니 섹스에 별 관심 없던 여성들도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을 것이다.

여기에 남녀의 하룻밤 섹스 즉, ‘원 나이트 스탠드’를 주선해 준다는 사이트 마저 생겨났다. 엽기 신드롬으로 인터넷 문화의 주류로 떠오른 ‘딴지일보’의 야심 찬 프로젝트 ‘남녀불꽃노동당(남로당)’이 바로 그 것. 이 곳에서 그야말로 색정남녀들은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스스로를 불태웠다. 이제 한국의 네티즌은 섹스를 터부시하지 않는다. 기회만 있고, 서로의 의기투합만 되면 도덕적 죄책감 없이 하룻밤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섹스에 적극적인 여성이 다수는 아니다. 그 증거로 남로당의 ‘여성해방지구(여방구)’에서 벌어진 ‘프레피’라는 여성의 글에 대한 논란이 이를 증명한다.

프레피라는 아이디를 가진 여성은 여방구의 문제적 논객이다. 그녀는 금기시됐던 원초적 언어(자지, 보지 등)를 꺼리낌없이 사용하며, 스스로의 섹스 행각을 리얼하게 서술하곤 했다. 그 내용에는 그룹섹스, 야외섹스, 동성애, 항문섹스 등 일반적인 성 모럴을 한참 앞선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그녀가 아무 생각이 없는 그냥 밝히는 여자라고 볼 수 없는 것이 그녀의 글에는 이런 말초적 이야기말고도 재즈·락 등의 음악적 전문 지식, 아마추어 수준을 넘는 글 솜씨, 사회 전반에 걸친 시니컬한 시선 등 그야말로 쿨(Cool)한 여성으로 비칠만한 소지가 다분했다.

당연히 그녀의 글에는 열광적인 팬과 경멸하는 안티(Anti)가 극명하게 나눠졌다. 프레피가 글을 쓸 때마다 그 뒤에 따라붙는 답변(리플)은 한 페이지를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프레피는 그러한 반응들에 일체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논쟁은 그야말로 제3자들끼리의 문화충돌로 번졌다. 결국 ‘프레피의 글이 여방구의 성격에 맞는가’가 논점이 됐다. 신경질적인 욕설도 많았지만 다수의 진지한 토론은 여방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레피의 경우에서처럼 논쟁을 통해 ‘성을 하나의 억압으로 판단’하는 ‘성해방주의자’와 ‘성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지만 일부러 공개할 것 또한 아니다’라는 ‘성도덕주의자’간의 논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성해방을 명분 삼아 단순히 일탈을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그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굳이 권장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직까지도 최소한의 도덕률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다수인 사회에서 손해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라면 이것도 기회주의적인 것일까?


2003. 5. 17
저작권자 © 한국전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