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 전에 출판된 일본 소설 ‘열쇠’는 그 내용이 매우 흥미로웠다. 소위 교수 가정의 인텔리 부부였는데 그 부인은 부부관계를 맺어도 반드시 어둠 속에서만 하게 해 남편이 한번도 부인의 나체를 보지 못했다. 그러니 얼마나 마누라의 옹달샘 등 나신을 보고 싶었겠는가. 그런데 우습게도 이 여인은 남편이 아닌 사위에게 모든 것을 보여줬다. 그것도 목욕탕에서 말이다. 바로 목욕탕에서 기절한 냥 쓰러져 그 사위가 나체의 장모를 침실로 옮긴 것이다.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남편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의 나체를 젊은 사위에게 너무나 야한 모습으로 다 보여줬으니 그 다음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독자들이 더 잘 알 것 같다. 사실 부부라고 해도 너무 자주 나체를 보여주거나 음모가 무성한 옹달샘을 대낮에 진정 추한 상태로 벌려 준다면 그것은 매우 바보 같은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처음에는 흥분이 되고 각양 각색의 포즈를 취하게 해 신나게 사랑놀이를 할 수 있겠지만, 아마 얼마 가지 않아 식상하게 될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술한 교수부인처럼 어둠 속에서만 팬티를 벗고 유방은 감춘 채 ‘성교’를 한다면 그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제 중년이 넘도록 남편에게 신혼 때처럼 아기자기한 사랑을 받고 있는 부인들을 보면 대부분 결정적일 때 나체를 보여주거나 아니면 묘한 모습으로 옹달샘을 벌려 남편의 흥분을 유도하고 발기를 도와 함께 사랑놀이를 즐겁게 한다. 한마디로 이런 부인들은 시도 때도 없이 항상 벌리라고 하면 벌리고 벗으라고 하면 벗는 어리석은 여성이 아니라 타임을 맞춰 여인 스스로 조절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특히, 40대 이상의 중년 여인들은 대부분 남편에게도 너무 체면 차리길 좋아해 대낮이나 불빛 속에서는 나체로 포즈를 취하는 것을 싫어한다. 아무리 남편이 애원하고 사정을 해도 말이다. 그러면서도 아기를 낳을 때는 남자 산부인과 의사 앞에서 나체로 두 다리를 쫙 벌리고 부끄러움 없이 다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 차원은 분명 다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남편에게 더 요염하게 보여줄 수도 있고 또 과감하게 행동을 할 수 있는데도 어쩐 일인지 항상 외면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웃 일본의 여성들은 우리 못지 않게 현모양처이지만 밤에만은 그렇지 않고 ‘요부’로 변한다고 한다. 바로 ‘성생활’을 원만히 하면서 함께 즐기기 위함이다.

이제 우리나라 부인들도 과감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밤이 아니고 낮이라도 남편들이 원한다면 때때로 나체를 보여주고 묘한 포즈도 취해 고개 숙인 남편을 일으켜 세워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는 남편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도 중요한 행동이라 하겠다. 다만 남편이 원한다고 시도 때도 없이 벌려주는 어리석은 짓만 안 한다면 되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남성들은 부인의 요염한 나체에서도 강한 흥분과 자극을 받는다. 그것은 젊었건 늙었건 상관이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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