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의 발전하려면 해외사업 수익이 내수 앞질러야
에너지 소비 왜곡 막기 위해서는 요금 현실화 절실

“電力人들은 ‘프라이드’ 가질 자격 있다”

2010년의 시작을 알리는 태양이 뜨겁게 솟아올랐다. 붉은 태양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것처럼, 지난 몇 년간 어둠의 긴 터널을 걸어온 전력산업계에도 환한 빛을 전달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하지만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는 법. 전력산업계도 스스로 이 환한 빛을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좀처럼 언론에 나서지 않던 전력인들의 영원한 ‘大兄’, 한전 전우회 이종훈 회장이 2010년 신년을 맞아 전력산업계가 올 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 작년 말 해외언론에서 ‘경악’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국내 전력산업계가 UAE에서 큰일을 해냈습니다. 이번 성과에 대해 평가를 해 주신다면.

UAE에서 400억 불에 달하는 원자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했다는 것은, 앞으로 당분간 어떤 플랜트 분야 수출도 이 기록을 깨지 못할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쾌거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특히 국가원수가 수주전에 직접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기술력과 협상력이 동시에 뒷받침되지 않으면 해외진출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상전만을 갖고는 현대전(戰)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표현합니다. 기술력, 가격경쟁력, 공기, 안전성 등이 지상전이라면, 정치적 협상력은 공중전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지상전과 공중전이 동시에 승리해야만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한 것은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그 전쟁에도 참여하지 못한다는 점이죠. 그동안 원자력 기술 자립을 위해, 또 완벽한 원전 운영을 위해 피땀 나는 노력을 펼쳐온 전력인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한전 김영준 前 사장, 박정기 前 사장, 이 두 분이 이런 쾌거를 올리는데 있어 숨은 공로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영준 前 사장의 경우 중단될 듯 했던 고리1호기를 회생시켰고, ‘탈유(脫油)전원’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원자력기술 자립을 적극 추진하면서 기술자립·국산화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박정기 前 사장은 1983년 부임 후 ‘에너토피아’란 슬로건을 내걸고, 에너지 자립을 위해 원자력을 집중 육성했으며, 특히 엄청난 정치적 리스크를 안고 원자력핵심기술을 도입하는 결단을 내린 인물입니다. 만약 이 두 분의 결단이 없었다면 아마도 오늘의 영광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본인도 1973년 원전 건설 PM을 시작으로, 한전 원자력건설처장, 한전 고리원전 본부장, 한전기술 사장, 한전 부사장, 한전 사장 등을 거치며 중국으로의 원전 수출에 노력했지만, 당시만 해도 기술력은 충분했는데, 앞에서 말한 공중전이 약해서 그런가 결국 실패했던 기억이 나네요.

■ 최근 몇 년간 한전의 경우 경영상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 1983년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괄목할 만한 전기요금 인상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연료가는 엄청나게 올랐는데 말이죠. 한전이라는 국가 경제의 초석이 되는 중요기업이 2008년도에 2조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했다는 것은 솔직히 말이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무엇보다 전기 낭비가 아주 심하다는데 문제가 더 있습니다. 석유를 써야 할 부분에 전기가 들어가고, 이를 또 보조해주는 등 이러한 부분은 에너지 사용에 있어 심한 왜곡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여기에 앞으로 한전의 경우 투자를 계속해야 하는데, 현 요금체계에서는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결국 건설이 제때 이뤄지지 않게 되고, 나중에는 안정적 전력공급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한전으로서는 돈을 빌려와서라도 건설을 해야 하는데, 이러한 부채를 두고 누적 적자인양 보도하는 것도 잘못된 부분입니다. 솔직히 한전의 채무가 많다고는 하지만 부채비율이 60~70% 수준에 불과한 굉장히 건전한 기업입니다.

따라서 올해 가장 먼저 전기요금을 현실화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는 한전 경영을 원상회복시키는 부분이기도 하고, 에너지 소비 왜곡 현상을 바로잡는 부분이기도 하며, 결국 이는 저탄소 녹색성장 사회를 만들어가는 가장 기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전 경영도 선진화시켜야 합니다. 즉 한전에 경영 자율권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봅니다.

■ 최근 한전과 발전회사간의 재통합 문제가 이슈로 부각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재통합 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선 재통합을 해야 된다, 하지 말아야 된다는데 대해서는 정책적 판단의 문제라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한전이 국내가 아닌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현재 국내 전력수요 전망을 보면 매년 성장률이 2~3%에 불과합니다. 향후 10년간 장기전망을 봐도 20% 내외입니다. 어떤 기업도 이러한 성장률에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즉 한전이 살 길은 해외로 나가는 것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해외에서만 100조원, 200조원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한전 사장 재직 당시 추진했던 필리핀 일리한 발전소 사업 같은 해외사업들이 꾸준히 이어졌어야 하는데, 전력산업구조개편이 이를 흩트려 놓았고, 지금은 해외로 나가는데 있어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현재 발전회사가 분할돼 있어, 한전에는 원자력, 발전 직군 직원이 없습니다. 즉 해외로 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원전, 화력발전 분야인데, 직원이 없다면 얼마나 많은 제약이 따르겠습니까. 아울러 전력회사들이 분할되면서 권한도 너무 많이 줄었습니다. 해외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위축된 권한은 제약으로 작용합니다.

▲ 이종훈 전우회장이 한전 사장 재직 시절 중국 강택민 전 국가주석과 원자력사업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는 모습.
■ 그렇다면 해외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중요한 부분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한전의 해외사업은 한전만의 돈벌이가 아닙니다. 국내 업체를 얼마나 더 많이 데리고 나가는가가 중요합니다. 엔지니어링, 제조업, 경영, 보수 등 모두 따라 나가야만 파급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재직 중 중국에 진출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다고 언급했는데, 당시 중국 측이 중국 내 기자재를 쓸 것을 요구하고, 경영권도 51% 갖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런 해외사업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거면 주식이나 사 놓지 뭐 하러 나갑니까.

한전은 이제 원전, 화력발전, 송변전, 배전 등 세계 제일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엄청 많은 양의 해외사업을 추진해야 합니다. 국내 사업보다 해외 사업을 통한 수익이 더 많아야 한전은 발전하게 되는 것이고, 또 그렇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봅니다. 국내 전력관련 기업들도 이러한 한전의 해외사업 추진에 발맞춰, 기술·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노력하고, 또 한전도 이러한 국내기업들과 동반 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그 어떤 산업보다도 성장성이 밝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전우회 회장으로서 전우회 운영 방침은 무엇입니까.

사실 나이가 들다보면 사회에서 소외감도 느끼고, 정신적으로 위축도 많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자주 만나고, 친목을 도모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한전 전우회 역시 그런 만남의 기회를 더 자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로 만나 그간의 소식도 전하고, 살아가는 지혜도 나누고….

지난 몇 년간 전우회의 경우 친목도모 기회도 많이 가졌고, 또 조그만 클럽활동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18개 지회를 중심으로 더 많은 만남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 노력덕분인가, 최근 총회나 행사를 해 보면 참여 인원들이 점점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7800여 회원들이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한시(漢詩)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계신데.

뭐 특별히 자랑할 부분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나이 들어 문화적인 취미활동으로서는 한시가 참 괜찮은 것 같아요. 한시는 보통 20자, 28자, 56자 등으로 이뤄지는데, 자신의 생각을 20자 정도로 압축해서 표현을 해야 하기에 두뇌 훈련을 많이 해야 합니다. 또 아이디어도 짜내야 하고. 여기에 비록 걸작은 아니지만, 하나의 시를 완성했을 때마다 자기 만족감도 느낄 수 있어 상당히 괜찮은 취미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 끝으로 전력인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예전에 한 지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해외에 3개월 정도 나갔다 돌아왔는데, 집안에 있던 디지털 시계가 초점 하나 틀리지 않고 잘 가고 있더라고 말입니다. 그러더니 3개월 동안 순간 정전 한 번 없이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고 있는 한전에 대해 참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례로 최근 60층짜리 초고층 건물을 여기저기서 짓고 있는데, 이 역시 안정적 전력공급이 없으면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전력이 자주 끊기면 엘리베이터가 가다 서버리고, 물도 공급하지 못하게 되는 등 어림도 없지요. 즉 한전의 전력공급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초고층 아파트도 건설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국내 IT산업, 석유화학산업, 건설산업 등 국가 경제의 성장세를 이끌었던 모든 산업들은 한전의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없었다면 절대 그 역할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전력인들은 ‘프라이드’를 가져도 된다고 봅니다. 특히 앞으로 펼쳐질 해외시장이나, 녹색성장 시대에 있어 전력인들의 가치는 더 올라갈 것이기에 자신 있게 자신의 역량을 펼쳐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주요 약력
△1961년 한전 입사 △1978년 한전 원자력건설처장 △1983년 한전 고리원전본부장 △1990년 한국전력기술 사장 △1993년 한국원자력연구소 이사장 △1993년 한전 사장 △1995년 한국공학한림원 이사장 △2000년 파워빌트컨설팅 사장(現) △2004년 한전 전우회 회장(現) △2009년 한전 이사회 의장(現)

저작권자 © 한국전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