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發奴無色旗(시발노무색기).

고대중국 삼황오제의 복희씨 시대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내용은 이렇다.

주역 뿐 아니라 길흉화복을 점치는 법을 만들었다는 복희씨. 그가 중국을 다스리고 있던 어느 날 황하의 물이 시작되고 있는 곳이라 하여 시발(始發)현(縣)이라 불리는 태백산의 한 산마을에 돌림병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복희씨가 돌림병을 잠재우기 위해 기도를 하던 사흘째 밤에 홀연 일진광풍이 불면서 태백산의 자연신이 나타나 "이 마을 사람들은 몇 년째 자연에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이를 괘씸히 여겨 벌을 주는 것이다. 내 집집마다 피를 보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복희씨는 그 방책으로 "집집마다 깃발에 동물의 피를 붉게 묻혀 걸어 두라" 고 명령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 중 관노(官奴) 하나가 '귀신은 본디 깨끗함을 싫어 하니 나는 피를 묻히지 않고 걸겠다' 며 따로 깃발을 걸었다. 그 날 밤 자연신이 복희씨한테 나타나 "이 마을사람들이 모두 정성을 보여 내 물러가려 했거늘 한 놈이 날 놀리니 몹시 불경스럽다. 내 역병을 물리지 않겠다"고 노여워했다. 그리하여 다음날부터 전염병이 더욱 돌아 마을 사람들이 더 큰 고통을 당하며 많은 이가 죽었으니 '이는 우리 마을(시발현)의 한 노비가 색깔 없는 깃발을 걸었기 때문이라(始發奴無色旗)' 하였다.

이 고사로 혼자 행동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始發奴無色旗(시발노무색기)'라고 하게 됐다고 한다. 나 혼자 잘났다고 하는 이를 일컬으며 욕으로 통하는 이 고사는 현재도 쌍두문자 '씨팔노무새끼'로 탈바꿈해 뒷골목에서나 많이 불리고 있다.

요즘 세상도 온통 이 모양이다. 특히 정치가 더욱 그렇다. 4당4색의 깃발을 앞세우며 과거 들추기에 혈안이 돼 있다. 똥 뭍은 변공이 다른 변공에게 "너 변이 나보다 많이 묻어 냄새가 더 지독하다"고 우기는 격이다. 그 변은 다름 아닌 '그들만의 정치자금'. 자금을 준 정경유착 기업들은 이들의 우김에 아무런 말도 없이 노심초사만 하고 있다. 돈줄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다.

사실상 강제적으로 걷어들인 정치자금으로 대선·총선마다 불법으로 돈잔치를 벌려 놓고 진흙탕 싸움만 일삼고 있다. "100억이네 200억이네" 만들 많지만 누구하나 똑소리 나게 책임지는 이가 없다. 어느 당이 소위 정치자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중국에서는 최근 은행의 다른 사람 계좌에서 5,540만위앤(약 83억원)을 불법인출한 금융사기범에게 사형이 집행됐다는 외신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혹자는 북한은 미쳐 망하고 남한은 썩어 망할 지경이라고 한다. '미친 놈'과 '썩은 놈'은 절대 뭉칠 수 없다. 이를 통일로 가는데 최고의 장애로 친다. 썩은 데는 구린내가 나게 마련. 그 구린내를 감춘다고 냄새가 나지 않을 리 없다. 너무나 팍팍 나는데도 '정치꾼'들은 정략적으로 막무가내 오리발이다.

비단 썩어빠진 곳이 어디 정치 뿐이라. 건설공사나 전문시공업계도 또 그러하다. 복마전이 따로 없다.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 예로 최근에 터진 전기공사업계의 '신기술 실사파문'을 봐도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썩어빠진 '님비주의'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시공분야에 검정된 신기술을 도입하면 모두에게 유익하다. 그런데도 일부 전기공사업자들은 자신만의 공사 품인 '밥줄'이 줄어든다고 아우성이다. 정치논리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한전은 급기야 이들의 집단이기에 쐐기를 박을 태세다. 전기공사협회가 실사를 실시한 결과를 심층분석한 끝에 발주공사의 품을 더욱 깎아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신기술사태'는 결국 전기공사업계의 '자업자득'으로 귀결될 공산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전기공사업자들의 '작태'는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했다.

본보의 사실보도에 불만을 품은 일부는 기자에게 "씨팔..." 등 뒷골목에서나 쓰는 소위 육두문자를 써가며 전화로 집단으로 협박까지 했다. 그들만의 '철밥통'을 사수하기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들의 행위는 대의가 아니다. 국가전력산업의 현장에서 땀 흘리는 모든 전기인들에게 큰 누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냉정을 기대한다.

현명한 이는 지혜로운 자다. 지혜로우려면 현명해야 한다. 그들은 이번 사태에서 대의를 거스르면 되레 손해를 본다는 평범한 진리를 터득하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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