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제협력단 중장기 자문단 지원 홀연히 라오스行
라오스전력청서 수요예측·급전지령·수요관리 등 자문

한국 전력기술 세계적 수준…전력관련 기업 활동 기대
기술자립 경험 전수는 곧 우리나라 영향력 넓히는 길


김문덕 前 서부발전 사장이 홀연히 해외봉사를 떠난 지 벌써 3개월째다.
사장임기를 마친 후 조용하던 그는 라오스로 떠났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해 그는 떠난 것인가.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에 그를 좋아하는 지인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항시 청년처럼 도전하고 색다른 경험을 늘 꿈꿨던 그였기에 지금은 한국에 없는 그에 대해 사람들은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열정에서 나온다. 빠짝 마른 그의 체구는 얼핏 보기에 연약해보이지만 그의 내재되어 있는 강인함을 한전이나 발전사 사장시절을 돌이켜보면 늘 누구나 목격할 수 있었다. 라오스에서 들려오는 전화 목소리에서는 고국에서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선지 반가움이 묻어나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만족스러운 그곳 활동의 체취가 서울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거취를 궁금해 하고 있던 차에 전화로 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근황을 소개한다.

◆ 해외봉사를 떠나게 된 동기는?
70년 중반 한전 신입사원 시절 원자력 건설현장 등에 나이 많으신 외국인기술자들이 많이 오셔서 기술자문을 하고 있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제가 한전 부장시절인 1993년도에 이종훈 사장께서 부임하시면서 직원들에게 넓은 세계로의 꿈을 가지고 영어와 컴퓨터 실력을 키우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은퇴 후에는 현직 때의 경험을 활용해서 해외 개발도상국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실은 국내에서 좀 더 일을 하다가 나가려 했지만 퇴임 후 2년간 취업이 제한되어 있고, 여러 가지로 거동이 무거울 수밖에 없어 보람있는 일을 찾다보니 해외봉사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 라오스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작년 9월 서부발전 퇴임 후 해외여행을 여러 곳 다녔습니다. 초겨울 무렵 추위를 피해 라오스를 여행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라오스전력청(EDL, Electricity Du Laos)에 근무하는 자문관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EDL에서 전력구매계약 등의 분야에 도움을 주고 계신 경제학박사이신데, 해마다 EDL에서 KOICA(한국국제협력단)에 전력기술자의 파견을 요구하고 있지만 지원자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 분도 저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해서 KOICA의 중장기 자문단에 지원했습니다.

◆ 현재 하고 계신 일은?
EDL 신사옥이 10층 건물인데 10층에 있는 NCC(National Control Center, 우리나라 전력거래소의 관제센터와 동일) 옆에 사무실을 내 줘 주로 수요예측이나 급전지령 문제점에 관한 자문을 시작했는데, 2주 후에 5층 기술처(Technical Dept.)에 사무실을 하나 더 마련해서 월, 화요일 주 이틀은 기술처에서 근무합니다. EDL 기술처는 1970년대 중반 제 신입사원 시절, 한전 기술부의 업무와 유사해서 업무영역이 매우 넓습니다. 장기 수요예측, 전원 및 계통계획을 포함한 모든 설비계획, 기술기준, 손실감소, 수요관리 등을 망라하고 있고 인원도 100명이 넘습니다. 우리가 과거 겪었던 문제들에 대한 문의가 대부분이라 큰 어려움은 없지만, 가끔 자세한 기술적 문의를 받을 때는 한전이나 전력거래소에 있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20여년 전 한전 부장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재미도 있고 젊어진 느낌입니다.

◆ 라오스 전력산업을 잠깐 소개해 주시면?
출국하기 전 인터넷으로 라오스전력 자료를 찾아봤는데 전원설비는 전부가 메콩강과 지류의 수력발전이고 4000MW 규모로 되어있어 그렇게 알고 왔습니다. 그런데 NCC(중앙급전소)에 가보니 최대수요가 700MW도 안되는데 피크시간에는 태국 등 인접국가에서 전력을 수입하고 있더군요. 라오스 영토에 있는 발전소도 외국자본으로 건설한 것이 많고 대개 수십 년간 양허되어 태국이나 중국으로 전력판매계약이 맺어진 상태라 라오스를 위한 발전소가 아닌 것이죠. EDL이 규모는 작아도 할 일은 다하고 있습니다. 지금 10%가 넘는 경제성장을 하고 있고 수요증가도 13%이상 되니 단기적으로 공급력 부족을 겪고 있지만 지금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발전소가 건설, 준공되면 회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재무적, 기술적으로 완전 자립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입니다. 다행히 EDL 곳곳에 우수한 인재들이 있기 때문에 낙관도 됩니다.

◆ 라오스에서 전력 관련 한국기업들의 활동은?
라오스가 재무적으로 취약하지만 각국에서 서로 원조를 주려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관계를 잘 맺어
▲ 김문덕 前 서부발전 사장(오른쪽 여덟번째), Mr. Khamsing EDL기술이사(왼쪽 여덞번째), Mr. Koller 독일 기술용역회사 Fichtner 전문가(왼쪽 일곱 번째) 등이 전력기기 구매사양작성을 위한 회의 참석 후 EDL 기술이사와 실무기술진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후속사업에 참여하려는 목적이겠죠. 한국의 전력관련 기업들도 우리나라의 ODA자금으로 하는 유무상 원조 사업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적사업이므로 당연히 투명한 입찰절차를 거쳐야 하지요. 그런데 간혹 한국기업간의 지나친 경쟁으로 라오스당국에 좋지 않은 인상을 주는 사례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익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의 국격이 손상되는 과당경쟁은 지양해야 하겠습니다. 저도 EDL의 경영에 도움이 되고, 우리나라 격에 걸 맞는 자세를 견지하고자 해요. 아무래도 대규모의 재무적 지원을 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보다는 약하지만 오히려 자동차, 금융 등 민간분야에서는 우리교민들의 활약이 대단합니다. 앞으로 경제성장에 가속도가 붙게 되면 전력관련 우리나라 기업들의 활동도 기대됩니다.

◆ 낯선 이국땅에서의 생활에 어려운 점은?
우리나라보다는 당연히 생활환경이 좋지 않지요. 제 경우는 날씨가 덥다는 것 빼놓고는 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음식도 야채와 과일 위주로 맛있고, 덥다고 하지만 회사나 집에는 에어컨이 있으니 괜찮습니다. 여기 와서 좋은 분들 많이 만났습니다. EDL임원들한테서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있고, 김수권 대사님, KOICA의 김항주 소장님 이하 직원들이 잘 챙겨주셔서 적응이 쉬웠습니다. 자문단의 일원으로 왔으니 아무래도 KOICA의 신세를 많이 지지요. 통신사정이 한국보다는 못하지만 mobile wifi로 IPTV도 보고, 저녁마다 애들하고의 통화도 어려움이 없습니다. 보이스톡도 국내보다 더 잘 되는 것 같고요. 건강유지를 위해 전에 현직에 있을 때와 똑 같이하고 있습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운동 1시간, 인절미에 과일로 아침식사, 7시 반 회사출근 4시 반 퇴근, 규칙적 생활로 아직까지 별 탈 없이 지냅니다.

◆ 후배들에게 해외봉사에 대하여 조언하신다면?
은퇴 후 해외봉사한다니까 부럽다 하는 사람도 있고, 낯선 땅에서 고생이 많지 않느냐는 분도 있고요. 다 본인 생각 나름이지요. 생활에 변화를 준다는 것은 흥분되고 재미있는 일입니다. 얼마 안 가서 나태해지고 지루해 할지 모르지만 지금 이 때만큼은 즐기고 싶습니다.
누가 그러듯이 제가 역마살도 끼고 외도를 즐기는지 모르겠습니다. 한전에 송변전 직군으로 입사했지만, 주로 기획이나 전력경제분야에서 근무했고, 구조개편 당시에는 전력거래소발족팀장, 한전 최초의 교차보직이었던 배전처장 등 예측치 못했던 생소한 보직을 맡아 스트레스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변화의 부담을 즐기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해외봉사는 변화를 즐기는 사람한테는 최고의 선택입니다. 문화, 언어, 음식, 업무관행 등 색다른 상황에 자신을 적응시키는 재미가 있습니다.
몇 가지 불미스런 일로 에너지공기업이 국민의 신뢰를 잃는 일도 있었지만 현재 우리의 전력기술은 자타가 인정하듯이 세계 제일입니다. 정전시간, 손실률, 설비이용률, 부하율, 요금수준 등 모든 지표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짧은 기간에 이루어 낸 압축성장이기 때문에 모든 경험이 우리 세대에 축척되어 있습니다. 이 값진 경험을 우리만 알고 있기는 너무 아깝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기술자립을 이루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행착오를 겪었고, 때로는 기술부족이라는 약점 때문에 선진국 장사꾼들에게 피해를 본 사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진국답게 약자를 도우면서 미래의 동반자 관계를 맺어 가는 것이 우리나라의 영향력을 넓히고 미래국익에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라고 봅니다. 은퇴한 선배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비춰진다면 저의 가장 큰 보람이 되겠습니다.


※김문덕은 누구인가.
김문덕 前 사장은 서울 중동고, 연세대 전기공학과, 미국 MIT대학원 핵공학과(석사) 출신으로 1977년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해 배전처장, 전력연구원장, 송변전처장을 거쳐 송변전본부장, 한전 부사장을 역임했다. 또한 그는 발전, 송변전, 배전, 경영 등 전력산업의 모든 분야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전력산업의 베테랑이다.
그는 전력산업구조개편 당시 한전에서 거래소 발족팀장을 역임, 전력거래소 탄생을 직접 주도 했으며 2010년 초부터 2013년 말까지 재직한 서부발전 사장시절에는 개혁과 혁신을 지속적으로 실시, 이 회사의 기업문화와 규모를 크게 도약시켰다는 평판을 들었다.
학문적인 실력도 인정받아 2011년에는 대한전기학회의 회장을 역임, 우리나라 전기계의 산학연 협력을 위해 노력하여 큰 성과도 거두었다는 학계의 평가도 있다.
김 前 사장은 “어떤 일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 이것이 기회다”라는 소신을 가지고 문제를 몸으로 직접 부딪쳐 합리적으로 해결, 반드시 성공해내는 승부사의 기질도 가지고 있다. 
그는 기술적 능력이나 경험 면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 전력계의 몇 안되는 전문가로 꼽힌다.
감성적인 면도 뛰어나 그의 트럼펫 연주는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할 정도의 실력이며 종교에서는 독실한 크리스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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