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기 위해 양초를 훔쳐서는 안 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교훈을 담은 유명한 격언이다.

아무리 목적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수단이 정당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선(善)이 아니라는 것은 고등학교 윤리시간에도 배운다. 즉, 이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은 현실에서 무시되는 일이 많다.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지난주 전기조합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다.

‘단체수계 품목 한시적 지정’이라는 위기를 맞은 전기조합 조합원들은 각자의 이익에 따라 두 가지의 상반된 해결방법을 주장하고 있다.

하나는 “(전기조합 정상화)비대위가 진정 등 시끄럽게 해서 생긴 일이니 그들만 조용하면 된다”는 주로 이병설 이사장 측이 펼치는 논리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사장이 비리를 저질렀고, 지금 선거방식으로는 영구집권도 가능하니 선거방식을 공정한 직선제로 해 깨끗한 조합을 만들어야 한다”는 비대위와 단수협의 논리가 있다.

이 중 기자가 생각하기에 현재 우세한 논리는 후자 쪽이다. 명분상으로도 직접민주주의라는 원칙에 입각해 있고, 세력상으로도 많은 조합원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그들은 명분의 우세를 승리로 이끌기 위한, 수단의 정당성을 간과했다. 3일 이사장과 만난 단수협은 일부 과격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고, 이사장이 탈출(단수협 표현으로는 ‘도주’)한 이후 이사장과 같이 있었던 조합원에게 욕설과 주먹을 휘둘렀다.

분노가 승리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감정대로 할 생각이었으면 지금까지의 수많은 협상과 탄원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민주적인 조합을 요구하는 ‘싸움’이라면 그 싸움에 그림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 폭력과 욕설은 스스로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民主主義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民主主義式으로 싸워야 한다 /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民主主義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김수영 <하… 그림자가 없다〉中)

양현석기자 kautsky@e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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