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전 신사업추진처 백남길 ESS사업부장.
지난 5월 9일 독일의 전력가격이 한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리로서는 매우 생소하고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보도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전체 전력수요의 80% 이상을 충당했기 때문이란다.
독일은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화력, 원자력 등 다른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보다 우선 매입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에 전기 공급이 수요보다 더 많을 경우엔 운전 유지를 위해 기존 방식의 발전사업자가 전력시장에 전기를 마이너스 가격으로 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독일은 2013년 말 누적용량 기준으로 태양광 35.7GW, 풍력 34.3GW로 글로벌 시장에서 1위와 3위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또한 2012년 기준으로 연평균 전력소비에서 약 5.62%를 태양광발전으로 공급하고 순간 최대전력소비의 공급비율은 45%에 이른다. 그러다보니 날씨조건에 따라 순간적인 발전량의 변동 폭이 크게 발생해 계통주파수 변동과 같은 악영향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 이하 ESS)로 해결하고 있다. 그래서 독일의 ESS시장이 3~4년 전부터 속된 말로 좀 핫(hot) 하다.

그리드-패리티를 넘어 배터리-패리티까지
독일은 소용량 태양광발전에 ESS를 연계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10㎾ 이하의 가정용 태양광이 용량기준 17%, 시스템 수량기준으로는 70%에 이른다.
100㎾ 이하 태양광은 약 70%가 저전압선로에 연계되어 있다. 소용량 태양광을 ESS에 연계할 경우 계통운영의 불안정성을 해결하고 저압계통의 연계로 인한 송배전 증설 투자비 회피는 물론, ESS에 저장된 전력을 필요할 때 사용하는 효율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ESS연계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소규모 상업용이나 가정용 전기요금보다 ESS에 전기를 저장했다 필요할 때 사용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다. 그리드-패리티(Grid-Parity)를 패러디(?)해 2018년까지 배터리-패리티(Battery-Parity)가 온다는 자료를 독일 무역투자청(Germany Trade & Invest, 이하 GTAI)은 홍보하고 있다. 2011년부터 가정용 태양광발전의 FIT(Feed in Tariff) 가격이 소매 전기요금보다 낮아져 생산된 전기를 판매하는 것 보다 자가 소비하는 것이 더 이득이 되는 상황이 되면서 ESS를 활용해 저녁과 늦은 밤까지 소비시간을 늘려 전기 자급률을 60~80%에 이른다.
한 가정의 연평균 전기사용량은 약 3.5㎿h로 태양광 5㎾와 6㎾h 배터리를 한 개 시스템으로 구성할 경우 1년간 전기 자급률은 평균 70%(여름 100%, 겨울 20% 이하)가 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독일의 태양광발전 시장은 자가 소비를 통한 전기료 절약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ESS 보조금 정책(Solar Storage Incentive Program)
독일 연방환경부는 2013년 5월부터 2015년 4분기까지 2년간 약 5000만 유로(매년 2500만 유로)의 ESS 설치보조금 지급하는 독일부흥은행(kfW)의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대상은 30㎾ 이하 용량(상업용 30㎾ 이하, 가정용 10㎾ 이하)의 계통에 접속하는 태양광 발전설비에 ESS를 부착하는 설비에 한정함으로써 주로 태양광 발전전력의 자가 소비를 촉진시키고자 하는 목적이다. ESS 설치보조금은 ESS 전체비용의 약 30%에 이르며 보조금 상한금액으로 신규 PV+ESS 일괄 구축형은 600유로/㎾, 기존에 설치된 PV에 ESS 추가 부착형은 660유로/㎾까지이다.
2016년 3월 새롭게 시작된 독일부흥은행(kfW)의 인센티브 프로그램은 전기의 최종 소비자인 가정용을 대상으로 하고 배터리 구입비용의 25%를 정부로부터 보조 받는 것이다. 대상은 2012년 이후 설치된 30㎾ 이하의 태양광발전설비를 대상으로 하고 설치용량의 최대 50%까지만 계통접속점에서 발전할 수 있고 나머지 50%는 저장해야 한다. 배터리 제조사는 10년 성능보증을 해야 한다. 이 보조금은 올해 3월 시작해 초기 25%이며 매 6개월마다 3%로씩 낮은 보조금이 제공되며 2018년말 10%로 종료될 예정이다.
소형 태양광발전 연계형 ESS 설치보조금 이외에도 대형 파일럿 프로젝트 용도의 Energy Storage 설치 시에도 전체 투자금액의 30%를 지원해주고 있고, 현재는 Energy Storage 보급 확대를 위해서 낮은 금리의 장기대출 지원정책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독일 투자청 자료에 따르면 이런 보조금 정책에 힘입어 리튬이온배터리를 기반으로 한 ESS 설치비용은 지난 2년간 매년 평균 약 18%씩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파수조정용 ESS 시장동향
최근 독일 정부는 자국 내 태양광, 육상 및 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발전출력 불안정성에 대한 국가 송전망을 보호하기 위해 주파수조정 등 실시간 대응능력을 갖추도록 규제를 신설했다.
이에 따라 독일의 대형발전사들은 이러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발전단지에 ESS를 구축하는 대형 프로젝트들을 추진하고 있다. 이 ESS는 주파수조정(Frequency Regulation)용으로 순간적인 전력수요 변화에 대응해 실시간으로 전력을 저장, 공급하며 발전기의 주파수를 일정한 기준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대용량 배터리시스템은 대규모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단지가 계통에 원활히 접속하고 수급균형을 맞추는데 점차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리튬이온배터리를 기반으로 한 유럽 최초의 상업용 주파수조정용 ESS는 독일의 5㎿/5㎿h 규모(한국의 삼성SDI 배터리 공급)의 WEMAG 프로젝트로 2014년 9월에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이후 10㎿/10.8㎿h 규모(한국의 LG화학 배터리 공급)의 에너퀠레사 프로젝트가 시운전을 마치고 상업운전을 준비 중이다. 또한, 유틸리티社인 STEAG가 리튬이온 배터리를 기반으로 한 15㎿ 규모의 6개 주파수조정용 ESS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1차주파수제어용 ESS의 설비용량은 2012년에 약 1㎿에서 2015년에 27㎿ 규모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독일의 주파수조정용 ESS 사업의 추진배경과 비즈모델은 한국의 것과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는 ESS로 저원가 발전기의 주파수조정 예비력을 대체해 이의 이용률을 높여 편익을 창출하지만 독일의 경우는 신재생발전원의 증가로 인한 계통 불안정성을 ESS가 해소하면서 주파수조정서비스를 화력발전기와의 함께 보조서비스 시장에서 경쟁 입찰을 통해 서비스비용을 받아 투자비를 회수하고 있다.
GTAI 자료에 따르면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와 스위스를 연결하는 전력망의 1차 예비력(Primary Control Power)은 약 790㎿이고 유럽전체는 약 3000㎿인데 2016년 이전 4년간 주 단위 평균 서비스 비용은 ㎿당 3200유로이었으나 최근 주파수조정서비스시장에서 전통적인 화력발전기와 경쟁으로 서비스비용은 다소 떨어진 상태이다.
또한 한국의 주파수조정용 ESS는 대형발전기의 계통탈락 시 발생되는 급작스런 주파수하락에 대한 대비가 주 용도인 반면, 독일의 것은 평상시 수급 불균형에 따른 주파수 변동에 응동하고 있는 것이 주 용도라 할 수 있다.

유럽 최대 주파수조정용 ESS 프로젝트
지난 10월 11일 국제에너지기구(IEA)와 국제스마트그리드협회(ISGAN)가 공동주최한 워크숍에 참석할 일이 있어 내친김에 독일의 주파수조정용 ESS 현장을 방문했다. 신재생전문기업인 에너기퀠레(Energiequelle)社가 구축한 펠트하임(Feldheim) ESS 운영방법을 파악하고 벤치마킹하기 위해서다.
이 사이트의 설비용량은 10㎿/10.8㎿h로 약 2000가구가 하루 동안 전력을 사용할 수 있는 규모인데 최근 시운전을 마치고 11월초부터 주파수조정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펠트하임 마을은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남서쪽으로 약 80㎞ 떨어진 브란덴브르크州 트로이엔브라이첸市에 위치한 시골마을인데 드물게 신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자급자족한다. 이런 이유로 불과 37가구 약 130명이 거주하지만 연간 3000명 이상의 방문객이 올 정도로 주목 받는 마을이다.
이 마을의 주 신재생설비는 풍력발전기 43기, 태양광모듈 9844기와 돼지 배설물과 옥수수를 활용한 바이오매스 발전소 등 신재생발전만으로 마을의 전기와 난방용 에너지를 충당하고 있다. 특히 전기는 전체 생산분의 1%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외부에 판매해 수익을 올릴 정도로 높은 효율을 보여 전 세계 에너지 활용의 미래상으로 크게 주목 받고 있다.

시사점
우리나라도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기 위해 신재생 발전원의 확대와 활성화에 많은 정책적 노력을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풍력발전과 태양광 발전원과 ESS를 연계할 경우 신재생공급인정서(REC) 가중치를 높여주는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앞서 보았듯이 독일의 경우 30㎾ 이하의 상업용과 가정용 소용량 태양광에 연계하는 ESS 설치를 촉진하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전기의 자가소비를 유도하고 있다. 이는 국가적으로는 신재생 발전비율도 높이면서 송배전망을 추가적인 신설도 억제하는 부수적 효과도 있다. 또한 ESS의 수요창출로 이어져 매년 평균 18% 정도의 가격하락으로 이어져 더 많은 ESS 설치수요가 생기는 선순환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전력계통에 신재생발전원의 증가로 생기는 불완전성을 ESS 적용으로 해결하고 있다. 주파수조정용 ESS시장도 그 일환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독일의 주파수조정용 ESS 사업모델은 우리와 다르다.
우리의 경우는 보조서비스 시장이 없고 그 서비스비용이 매우 작기 때문에 저원가발전기의 이용률을 높여 생기는 전력구입비 절감분으로 투자비를 회수하고 있는 구조이다. 그 얘기는 전력거래시장에서 전기를 구입해 판매하는 한전 외에는 사업의 경제성이 없다는 얘기다.
물론 전력거래 시장의 시스템 보완이 선행돼야 하겠지만 독일이나 미국 등과 같이 보조서비스시장에서 ESS 사업자가 주파수조정서비스를 제공해 그 편익을 창출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우리나라의 주파수조정용 ESS 사업들이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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