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환과 축의금을 사양합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달 24일 오후 1시 서울 강남 메리어트호텔 7층 웨딩홀의 예식 안내원들은 화객들에게 “축의금은 일체 받지 않기로 했다”며 일일이 양해를 구하기에 바빴다.

한준호 한전 신임 사장-민태희 여사의 장남 한상희(SK네트워크 근무) 군과 신부 주현숙 양의 혼인를 축하해 주기 위해 알음으로 찾아온 화객들은 다소 놀랐다. 한 사장이 한전에 새로 몸을 담은 지 한 달도 안된 터라 예식은 부임하기 훨씬 전에 날을 잡아 당연히 축의금 정도는 받을 줄 알고 다들 예식장을 찾았지만 극구 사양하자 진한 감동을 받았다. 한전 사장으로서 공직자의 귀감을 보였기 때문이다. 청첩장도 가까운 친지한테만 돌린 것으로 알려졌는데도 우연히 알고 찾아 온 이들이 대다수라 더더욱 그랬다.

전·현직 장관을 비롯 전직 정부부처, 한전 및 자회사, 발전사, 협력업체, 친지 등 1000여 화객들은 예상치 않은‘공짜 식사’를 대접받으며 새 신랑과 신부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함과 동시에 한 신임 사장의 깨끗한 공직처신에 더욱 큰 박수를 보냈다.

특히 신랑의 은사인 숭실대 유동길 박사의 주례사도 이 날 예식을 빛내기에 충분했다.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 서로 손잡고 먼 길 걸어가는 오늘의 두 주인공이 백지에 보기 좋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마음으로 후원해 달라”고 주문하자 화객들은 박수로 화답하는 인지상정이 넘치는 식장으로 만들었다.

기자와 함께 자리한 한 화객은 그 동안 한 사장이 많은 지인들의 애경사에 성의를 다했을 텐데 이번 장남의 혼례에서 이들로부터 보답을 사양한 것은 공직자 이전에 개인적으론 불익이 크다고 말하기도. 주위 화객들 역시 고위공직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며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우리 민족의 고유 풍속인 ‘애경사 품앗이’는 공직자라고 예외일 수 없다. 한 사장은 장남혼례를 치루면서 보이지 않은 구설수를 사전에 차단, 윤리경영을 사회에서도 실천했다. 이런 모습에 감동을 받으면서도 기자는 우리 사회가 이런 게 아닌데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회윤리규범도 현실적으로 아름답게 바뀌어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아직도 잔잔하다.

박기웅 기자 giwoong@e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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