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인 대형발전소 건설은 지양할 때

 

▲ 서부발전 김문덕 前 사장
전력수요증가 둔화, 리스크 적어 정책변경적기
환경 및 안전 위해서 주변국공조 더 시급한 일
전기관련산업 지속성장, 해외사업 발굴필요
수요관리 분산형전원 확산, 제도지원 있어야

3년 전 홀연히 떠나셨는데 보람있는 시간이 되었는지요?
누구나 새로운 도전을 할 때는 멋진 꿈을 갖게 되지요. 지금 뒤돌아보면 부끄러운 마음이 많습니다. 라오스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교만한 생각을 가졌었는데 문화차이도 있고 조직구조나 운영방식도 달라서 나름 경영관련 자문을 많이 했지만 실 적용이 어렵더군요. 젊은 엔지니어들 대상 기술 자문과 교육 세미나 등에서 보람을 찾았다고나 할까요? 일하는 것이 느려 답답했지만 그래도 몇몇 젊은이들이 문제의식과 의욕을 갖고 배우려하는 것을 보니 이 나라에도 밝은 미래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업무 외 활동으로 라오스 최초의 브라스밴드를 조직해 음악을 가르치고 아직은 서툰 솜씨들이지만 젊은 학생들과 같이한 시간은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떠나 계신 동안 고국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심경은?

외국에 나오면 더 애국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올 들어 우리나라 정계 급변에 라오스 사람들도 관심을 갖고 물어보는데 부끄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국민의 힘으로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는 선진 민주국가가 되었구나 하는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현 정부들어서 에너지 정책에 큰 변화가 보이는데 전문가로서 한 말씀

언론발표 내용만 보고 있으니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으나 환경과 안전을 중시하여 원전과 석탄발전으로 부터 신재생에너지 위주의 전환이 골자로 보여 집니다.
16년전 한전에서 계통계획을 맡고 있을 때가 생각납니다. 당시 설비규모가 5천7백만kW, 최대수요가 4천3백만kW 정도밖에 안됐지만 발전소와 송전설비 건설반대로 인해 종교계와 지역 주민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사이에 찬반으로 나뉘어 극심한 갈등이 빚어지고 계량할 수 없는 사회적 비용과 엄청난 국민 불편이 있었습니다. 미래 20년간의 장기설비계획을 세우면서 우리나라에서 언제까지 대형 전력설비 건설이 가능할 까 고민하게 됐지요. 전력의 45%가 서울에서 소비되니 남쪽의 전원 단지로 부터 대규모 송전이 필요하고 765kV 건설로 인한 밀양지역의 뼈아픈 갈등은 그 때부터 예견되었던 것입니다. 직원들과 토의하면서 이런 결론이 나오더군요. 시기예측은 어렵지만 설비규모가 1억1천만kW, 최대수요는 9천만~1억kW, 일인당 전력소비 1만kWh를 포화점으로 보고 그 이후는 강력한 수요관리로 증가율을 1% 이하로 억제하되, 추가되는 전원소요는 자급자족식의 분산형 전원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분산형 전원이 전력생산단가는 비싸겠지만 나날이 커가는 갈등에 의한 사회적 손실을 상쇄할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제 그 시점이 도래한 것 같습니다. 현재 건설 중인 설비가 준공되면 1억2천만kW를 넘을 것이며, 수요증가도 예측을 밑돌아 현재 8천만kW 수준으로 예비력도 여유가 있어서 당분간은 수급불안 리스크도 적으니 정책변경의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수요관리와 분산형 전원 확산을 위한 기술과 제도의 획기적인 확충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수요관리는 대형 발전소건설과 같은 확실한 결과를 보장하지 못하는 만큼 세심한 제도지원이 필요하지요. 한전이 보유한 빅데이터, 그 중 핵심인 CIS(고객정보), 가전기기까지 망라하는 IoT, 거기에 Smart Grid 기술이 엮여져야 최선의 수요관리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또한 태양광 풍력 등은 자연현상에 의해 발전량이 증감하므로 계통연결운전 시 전기품질을 유지키 위한 기술이 고도화 되어야 합니다. ESS와 태양광의 조합같은 분산형 전원 상업기술의 진척도 속속 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과 산업 확산의 동기를 부여하는 세제와 금융지원 및 인허가 체계, 전기요금구조, 정보공유 등 관련제도의 역할이 아직 부족합니다. 항상 그렇듯이 기술진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가 걸림돌이지요. 새 정부에서 이 분야에 많은 노력을 하리라고 봅니다.

 

방사능위험과 미세먼지 때문에 원자력과 석탄발전이 배척되는 것 같은데… 

 환경과 안전이 아니더라도 대형 발전소 위주 정책은 퇴진의 타이밍이 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원자력과 석탄발전소를 없앤다고 환경 및 안전에 실효성이 있을까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미세먼지 고농도 기간에 지역별 기여도를 연구한 보고서를 본적이 있는데, 중국의 원인이 절반이 된다고 합니다. 국내의 자동차, 발전소, 공장 전부를 정지시켜도 먼지 농도를 절반밖에 줄일 수 없다는 것이지요. 대기확산 모형으로 시뮬레이션이 필요하겠지만, 석탄화력발전소 전부를 정지시킨다 해도 미세먼지 감소를 체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자력의 방사능 위험도 마찬가지입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부터 우리가 큰 피해를 보지 않은 것은 그 위치가 일본의 동쪽 끝 해안이라서 편서풍의 영향을 받는 방사능 낙진과 오염된 해류가 한반도를 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일본에서는 울진이나 고리원전 사고를 더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중국은 36기의 원자로가 운전 중이고 21개를 건설 중이며 야심찬 추진으로 2030년엔 1억5천만kW의 원자로 용량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한반도와 인접한 산동반도에 세 개의 원전단지가 있지요. 후쿠시마 같은 사고가 산동반도에서 생긴다면 서해의 오염은 물론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이 국내 원전 사고 시 보다 더 클지 모릅니다. 
환경과 안전이 목적이라면 주변국 국제 공조가 더 시급한 일이라고 봅니다. 물론 중국 측에서 적극적으로 응할지는 미지수지만 정치적인 접근이 아니라, 안전에 대한 기준수립과 감시, 상황공유 등 기술적인 교류로 시작한다면 효과적 대책 수립이 가능할 겁니다.  기후환경변화 대응에 모범을 보여야 할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을 탈퇴 한답니다. 리더쉽 발휘의 명예보다 실익을 꾀하겠다는 거지요. 우리나라는 에너지를 대외에 의존하고 있는 자원 최빈국입니다. 감성적 접근보다는 실효성을 위한 국제 공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에너지 정책 변화와 함께 전력산업의 미래도 불투명하리라 보는데…

요즘 미래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오는데 대부분 앞으로 전력회사는 사라질 것이라고 결론 내리더군요. 저는 사라진다는 데는 동의할 수가 없고 다만 업태는 많이 바뀔 것이라고 봅니다. 대용량발송전의 시대에서 자급자족식 Micro-Grid시대로 전환되더라도 당분간은 기존설비의 유지보수와 함께 신기술의 발 빠른 접목으로 경쟁력을 유지 할 겁니다. 먼 훗날 가정단위 망 독립이 완성되어도 설치와 유지보수는 지속되어야 하지요. 전력은 50년 전 교과서를 아직도 사용할 정도로 고전물리학에 기본을 두는 클래식한 기술입니다. 그러나 ICT 등의 주변기술과의 융합으로 끊임없이 진화하며 복잡한 현대의 경제활동을 떠받치고 있고, 앞으로도 주도적인 변화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환경과 국민안전이 아니라도 추가적인 대형발전소 건설은 중단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간과하면 안 될 것이 관련 산업의 생태계 보존입니다. 그 동안의 사업추진과 기술개발로 축적된 우리의 인력과 노하우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대형발전소 건설운영 위주의 정책은 바꿔야 할 시점이 왔지만, 원자력설비 폐기기술과 소형 피동형 리액터개발 등 안전이 담보되는 기술을 개발 활용하고 해외시장을 공략하는 방향전환도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송전분야도 초초고압, HVDC, 초전도송전 등 신기술의 실용화와 함께 동북아송전망 등 에너지망 광역연계(Global energy interconnection)를 위한 새로운 일거리를 준비해야 합니다.
일거리가 있어야 일자리도 생기는데 포화되어 가는 국내 전력산업의 일자리는 공유하는 것이지 창출은 아니지요. 공기업에서만 오래 근무한 저는 위험회피를 최우선으로 사업추진을 해 왔는데, 라오스에서 중국의 해외사업개발과 투자방식을 보니 도전이 되더군요. 시작할 때는 무모한 투자결정으로 보이지만 그들 특유의 접근으로 수익을 내거나 미래사업의 토대로 활용합니다. 한마디로 사업의 주인의식인데 컨트리리스크가 큰 라오스가 마치 자기 영토인 것처럼 투자에 적극적이라 오히려 라오스 정부에서 경계심을 나타낼 정도입니다.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MB정부의 잘못된 해외자원외교를 지적하면서, 플랜트 사업인 해외전력사업 개발도 옥석을 구분치 않고 중단, 철수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지요. 지난 수년간 일거리 창출의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지금도 해외사업개발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일거리 창출의 역군들이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얘기가 길어졌는데 고전적인 대형발전소의 건설은 지양할 때가 도래했습니다. 다만  수요관리를 위한 요소기술과 관련제도의 혁신적 백업, 전력산업의 지속성장을 위한 해외사업의 발굴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해답은 기술과 해외에 있습니다.  지구상에 널려있는 요소기술들을 융합해 전기기술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해외에 눈을 돌려 일거리를 찾아나서야 합니다.

 

이제 귀국하셔서 시간적 여유가 많으실텐데 어떻게 소일하실 생각이신지?


제가 나가있는 동안 손녀와 손자를 봤습니다. 라오스에 다녀가기도 했지만, 다시 안아보니 너무 예쁘네요. 제게 가장 행복한 시간을 주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정 많은 사람들 있는 라오스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마음은 우리 손주들로 향하네요. 긴 시간 동떨어진 생활에 제 생각이 3년 전에 머물러 있지 않나 하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공감능력을 유지하려면 지인들과의 만남으로 생각의 동기화에도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김문덕은 누구인가.
김문덕 前 사장은 서울출신으로 중동고를 거쳐 연세대에서 전기공학, 미국 MIT에서 에너지 정책을 전공했으며 1977년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해 배전처장, 전력연구원장, 송변전처장을 거쳐 송변전본부장, 한전 부사장에 이어 한국서부발전의 사장을 역임했다. 그는 발전, 송변전, 배전 등 전력산업의 모든 분야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전력산업의 베테랑이다.
그는 전력산업구조개편 당시 한전에서 전력거래소 발족팀장을 역임, 전력거래소 탄생을 직접 주도 했으며 2010년 초부터 2013년 말까지 재직한 서부발전 사장시절에는 개혁과 혁신을 지속적으로 실시, 이 회사의 기업문화와 규모를 크게 도약시켰다는 평판을 들었다.
학문적인 실력도 인정받아 2011년에는 대한전기학회의 회장을 역임, 우리나라 전기계의 산학연 협력을 위해 노력하여 큰 성과도 거두었다는 학계의 평가도 있다.
서부발전에서 퇴임 후 KOICA 자문단에 지원, 동남아의 최빈국인 라오스에서 전력청의 Advisor로서 3년간의 해외봉사를 마치고 최근 돌아와 전기기술자로서 모범적인 삶을 후배들에게 보여줘 왔다. 그는 기술적 능력이나 경험 면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 전력계의 몇 안되는 전문가로 꼽힌다. 감성적인 면도 뛰어나 그의 트럼펫 연주는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할 정도의 실력이며 종교에서는 독실한 크리스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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