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구조개편의 도도한 강물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시대의 흐름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기자도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본질과 추진방향에 대해 시비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그 추진과정에서 소외된 그룹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소외된 대상이 힘없고 보호받아야 할 중소기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추진하면서 정부는 수많은 여론수렴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전문가그룹과 전력노조·국회·일반국민들을 대상으로 세미나 및 토론회, 각종 설명회 등 다양한 홍보수단으로 구조개편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홍보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전기공업계의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한 적이 과연 있었던가.

전력산업구조개편의 핵심은 쉽게 말해 한전의 분할과 민영화로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전의 협력업체들인 전기공업기업들은 지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기공업인들은 자신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지 못하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이들은 특히 앞으로 진행될 배전분할 문제에 관심이 크다. 발전과 송·변전 분야는 그 특성상 규모가 큰 중견기업들이 많이 참여하는 반면 배전부문은 그야말로 중소기업들의 각축전이기 때문이다.

물론 배전분할에 대한 전기공업인들의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다. 현재의 분할방안에 대해 파이가 커지는 효과를 기대하며 찬성하는 기업인도 있고, 영업력의 악화를 걱정하며 현재의 공기업 체제 유지를 바라는 기업인도 있다.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진짜 문제는 현재 한전 영업이 기업 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들의 의견은 추진과정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자신들의 생존 문제를 마치 국외자처럼 바라보아야만 하는 서글픈 현실이다.

전기공업인들은 말한다. “이미 늦었죠. 우리가 입장을 보인다고 뭐 달라지겠습니까?”라고. 누가 이들을 이렇게 자포자기하게 했는가. 누가 이들을 무심코 던진 돌에 죽을 수 있는 개구리의 처지로 만들었는가.

한두 기업의 문제가 아닌 한 분야의 산업의 성패가 걸려있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신중해야 한다. 천려일실(千慮一失)도 용납되지 않는다. 새정부가 들어서 재논의의 적기를 맞은 지금 전력산업구조개편의 논의과정에는 전기공업인의 목소리도 포함돼야한다.


2003.01.10
저작권자 © 한국전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