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부산 아시안 게임이 한창이던 지난 9일. 대한배구협회 회장이기도 한 강동석 한전 사장은 부산을 방문, 국가대표 배구 선수단을 위로한 뒤 바로 서울 삼성동 본사로 바삐 올라 오느라 얼굴에 땀이 약간 배어 있었다.
“일본은 별거 아닌데, 중국 벽이 높은 거 같애요. 중국만 잘 넘으면 금메달은 따놓은 당상인데…”

강 사장은 앉자마자 남자 선수들은 괜찮은데, 여자 선수들이 나이가 많아 걱정(결국 강 사장의 예상대로 남자 선수단은 금메달, 여자 선수단은 은메달을 획득했다)이라는 등 아시안 게임 배구 선수단 얘기를 먼저 꺼내면서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취임후 강 사장은 항상 유연함이 강함을 이길 수 있음을 몸소 실천해 오고 있다. 한 줄기 빛이 칠흑의 어둠을 이길 수 있듯이 유연성은 곧 한 줄기의 빛이다. 그는 겸손함을 늘 강조한다. 지난 5개월 동안 강 사장이 한전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에는 국내 최대 공기업의 CEO로서의 겸손의 미덕을 몸소 실천하는 최고 경영자로서의 모습만 보여줬다.

그래서 그런지 취임 후 5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직원들로부터의 그의 인기는 상종가를 치고 있다. 이러한 짧은 기간에 강 사장이 거대 조직인 한전을 파악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한전과 전력계를 열심히 공부하고 한전 직원이나 전력계 인사들과의 격이 없는 대화를 통해 가능했던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는 개혁이라는 말보다는 변화를 요구했고, 직원들을 전력산업구조개편이라는 절박성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포용력을 끊임없이 발휘했다.

전력산업구조개편은 의당히 전력계가 나아갈 방향이고 이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란 의식을 관계자들에게 심어주었다.

강 사장은 지난 5월 취임 초기 만났던 때와 사뭇 달랐다. 이제 한전이라는 거대한 조직에 대한 파악이 이미 끝난 듯 얼굴에 자신김이 비쳤다. 그리고 곧이어 강 사장은 인력·조직진단 및 배전사업부제 등 현재 가장 관심사항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히기 시작했다.

강 사장이 언급한 부분들을 보면 처음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마음가짐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다. 강 사장이 결연한 의지를 보였던 부분은 민영화나 배전사업부제 시행 등 전력산업구조개편의 추진 방향이 국가나 국민의 이익에 배치되지 않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점이다.

“미래가 불안하다고 무조건 저항만하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국민, 국가를 위해 진정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면 일단 부딪쳐가면서 완성해 나가는 것이 결국 승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소신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하자 없이 자신 있게 펼치려면 그만큼의 준비가 필요하다. 이날 만난 강 사장의 모습에서 이미 그 준비가 끝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펼쳐질 그의 변화의 정책들이 격변하면서 침체된 전력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에 충분하다고 확신해도 될 듯 했다.

본지 회장과 편집국장이 창간 1주년을 맞아 강동석 한전 사장을 만나 앞으로 진행될 각종 사안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한전 사장으로 내정된 뒤 취임전에 주위에서 사실 한전이 관료적이고 권위적이라는 등 부정적인 면을 지적하는 이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취임해서는 한전직원들은 어떠한 조직보다 우수하고 애사심과 자긍심이 높다고 느꼈습니다. 이러한 점은 관료주의적 성향과 차별화되는 보수성이 밑받침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

강 사장은 전력산업구조개편에 따른 장래에 대한 불안정·불확실성, 그리고 직원 보수 등 처우가 공기업 중 중상 정도에 불과한 점 등 여러모로 직원들에게 허탈감을 주는 요인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한전이 흔들리지 않고 이를 꿋꿋하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은 보수성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지난 태풍 루사가 지나간 후 복구작업에 매진하는 한전 직원들의 모습을 보고 더욱 그러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한다.
“힘든 상황에서도 한전 직원들이 그렇게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한전 특유의 보수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전력분야에 관한한 ‘그 영광도 책임도 모두 우리 것’이라는 강한 보수성이 이를 가능케 한 것이죠”

강 사장이 느낀 한전의 보수성은 어떻게 보면 공무원 조직보다도 더 강하고 헌신적인 것이었다.
“오히려 사장인 내가 너무 헌신적이지 않느냐며 말려야 할 정도로 걱정까지 됐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열정은 한전 직원들의 투철한 사명감과 책임감에 바탕을 둔 가치 있는 보수성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강 사장은 이날 한전 및 자회사에 대한 비리 척결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자재납품 및 구매업무의 경우와 전기공사계약의 경우 일정한 실적과 자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완전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전기공사업계의 경우에는 다른 어떤 공사보다도 경쟁이 치열해 그만큼 말썽의 소지도 많을 거라 판단됩니다”

강 사장은 일부 이러한 모습들이 아직도 외부에서 보면 비리의 온상이라고 말을 듣게 하고 있지만 그래도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강 사장은 ‘예전에도 이래 왔는데’하는 타성이 아직도 남아 있다며 이를 타파할 2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첫째는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자존심 있고 장래에 대한 비전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소한 유혹에 절대 넘어가지 않습니다. 모든 직원들을 이러한 사람으로 육성하기 위해 앞으로 자질 및 소양을 개발 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실시할 것이며, 동시에 도덕·윤리 등 교양활동을 통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강 사장이 제시한 두 번째 방안은 제도적 개선에 있다.

“현재 비리의 발생이 입찰구매자격이 너무 까다로워 특정 업체에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진입장벽을 대폭 완화, 경쟁을 시킴으로서 비리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막을 계획입니다. 특히 이러한 제도를 채택함으로써 한전은 구매 공사 단가를 낮출 수 있고, 업계는 완전경쟁을 이루게 되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강 사장은 경쟁에 대한 폐해도 있다고 인정했다. 덤핑에 따른 부실공사 및 부실자재 납품 가능성 등이 있을 수는 있지만 중간 감리 및 검수활동을 강화하면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므로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구조개편과 관련, 강 사장은 취임초기부터 밝혔던 지론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것.

“한전의 최대주주이자, 전력산업구조개편을 주도하고 있는 정부의 안에 대해 무조건 적으로 반대해 봐야 실익이 없다는 것을 올해 초 발전파업시 노조원들이 국민적 호응도 얻지 못한 채 마무리 된 데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강 사장은 무조건적인 매각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즉 팔기 위한 목적으로 헐값으로 팔지는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제값을 받고 발전회사를 팔아 기존 한전이 했던 것보다 더 싸고 질좋은 전기를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면 주저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팔기위한 목적으로 파는데 급급해서 정당하게 받아야 할 가격을 못받는다는 것은 한전의 관리자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또한 배전분할과 관련해서도 내년 사업부제를 실시, 사내경쟁체제로 우선 해보자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배전사업부제는 책임경영을 실현하고 시행하는 방안이며, 법적분할이 아닌 만큼 정부 방침이 아니더라도 한전 사장이 효율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시행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강 사장은 이러한 사업부제 시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전사업부제가 지역을 중심으로 나눠지다 보니 본사를 어디에 둬야 하는가 하는 사소한 문제도 한국적 특성 때문에 그렇게 작다고 할 수 없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예를 들어 경남지역의 80%에 달하는 직원이 경남에 연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수도권에 두고 있는 등 연고지 문제들도 사업부제 시행에 있어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사장은 배전분할 시행전 선결과제가 많다는 점도 인정했다. 특히 독립채산이 가능한 사업부제를 이루려면 전기요금을 비롯한 선결과제가 많은 만큼 한전 뿐만 아니라 정부 및 제3자가 해야할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어떤 계획을 수립, 시행하는데 있어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시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는 만큼 준비가 70%만 되면 사업부제를 실행할 계획입니다”

배전사업부제를 1년간 모의운영해보면 예상했던 또는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사장은 배전사업부제가 전력산업구조개편의 성공여부를 좌우하는 배전부문의 법적분할 전단계인 만큼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 노사 모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사장은 배전분할 시행에 대해서도 발전사 매각문제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사업부제 실시 기간 동안 도출된 여러 문제점들이 1년 후에도 해결이 안됐다면 법적분할을 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문제점들이 해결됐다고 판단되면 그때 법적 분할을 시행할 계획입니다”

특히 강 사장은 배전분할의 경우에는 의약분업처럼 국민에게 호응을 받지 못하면 안된다며 반드시 국민에게 이익이 돼는 방안이 돼야 할 것이며, 궁극적인 목적 및 목표도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확실한 것은 한전은 국가기업이며, 한전의 서비스는 국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고 국민생활 수준 향상의 근원이 돼 왔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회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강 사장은 한전의 관리책임자로서 국민과 국가의 이익에 배치되는 일은 할 수 없다는 뜻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한편 최근 막바지에 이른 인력 및 조직진단과 관련, 강 사장은 “구조개편과 관계없이 책임경영체제를 갖추는 것도 좋다”는 말로 시작을 했다.

“한전이 쪼개지는데 대해 1만9,000명 한전직원은 물론 O·B들도 마음아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여기까지 왔겠느냐 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원인은 한전의 폐해가 확대 해석돼 정부와 국민에게 비쳐졌기 때문입니다”

강 사장은 10여년전에 한전 스스로가 선택해서 자기가 주체가 돼 변화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설명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안하다보니 타의에 의해서 이뤄지게 돼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자신이 했더라면 고통스러울지는 몰라도 즐거운 것이 됐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EDF사의 경우 한전 보다도 훨씬 큰 회사지만 지금 공기업을 유지하면서도 매출의 30%를 해외사업에서 이뤄내는 등 잘돼고 있지 않습니까. 한전맨들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강 사장이 인력 및 조직 진단은 5년, 10년 후의 한전의 비전을 요구한 것이라고 밝힌 것을 보면 이번 진단은 어쩌면 한전이 10년 후에 다시 이러한 고통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한 작업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이번에 실시하고 있는 인력 및 조직 진단은 한전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인력과 조직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효율적인가에 대한 것이지 단순히 현시점에서 짜맞추기식 계획은 아니라는 점 강조하고 싶습니다”

즉 비전과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강 사장은 이번 계획이 완성되면 “한면에는 장기비전이, 한면에는 인력 및 조직이 구체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강 사장은 처음에는 감축하려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견해도 있었으나, 이는 잘못된 생각으로 이번 진단은 인력을 ‘재편’하는 것이 바른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인력 및 조직 진단이 마무리되면 각자에 맞는 보직으로 재배치를 받을 것이고, 그러면 업무 전환훈련이 활발히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사장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 느낀점은 참으로 치밀하면서도 인간적이라는 점이다. 모든 것을 자신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국민과 직원들을 중심으로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지금부터 강 사장의 개혁의 고삐는 더욱 죌 것이다. 무엇보다 그 변화가 단순한 정부 방안에 의한 것이 아닌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고, 한전 직원들 역시 강 사장의 뜻을 받들고 따라주고 있다.

전력산업구조개편의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향이 바로서고 있다는 느낌이다. 강 사장이 국가-정부-노조-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력산업구조개편이 추진될 수 있도록 방향을 다잡은 것이다.

오는 26일 강 사장은 직원들과 함께 노사화합 마라톤에 참가한다. 전력산업구조개편의 당사자인 한전 사장의 자리가 마라톤 레이스처럼 고독하지 않을까. 하지만 혼자 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옆에서 같이 뛰어준다면 외롭지 않다. 특히 뜻을 같이하는 이면 더 그러할 것이다. 이 모습이 앞으로 한전이 나아갈 방향이다. 고독하고 어렵지만, 같이한다면 지금은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아마 5년, 10년 후 한전의 빛은 더욱 발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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