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초 여름의 일이었다. 50대 중반과 30대 초반의 모녀가 해변가로 피서여행을 갔다.
헌데, 공교롭게도 그 곳에서 40대 초반의 이혼남을 만나 3일 동안 함께 즐긴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 남성이 얼마나 바람둥이였는지 그 짧은 사이에 두 모녀를 모두 정복해 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과부였고 그 딸은 이혼녀였기에 함께 성욕을 채웠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남남이 아닌 모녀를 동시에 건드렸다는 점에서 큰 파장이 일어난 것이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딸에게 양보했으나 바람둥이 남정네의 생각은 달랐다.
어찌된 일인지 싱싱하고 탐스럽게 농익은 딸보다는 연시가 돼버려 흐물흐물하게 익어버린 엄마의 ‘맛’이 더 좋았고 너무나 감칠맛이 있어 딸을 외면한 것이다.

이렇게 되니 모녀지간의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 어머니는 묘안을 짜 내 셋이서 함께 살 것을 제안, 실천에 옮겼다.
그러나 그 딸의 불만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2~3일에 한 번씩 잠자리에 든 이 남성이 처음과는 달리 항상 형식상의 애무에 그치고 자기만족만 빨리 취한 후 상대는 생각하지 않은 채 배 위에서 내려와 바로 코를 고면서 자고 있으니 말이다. 

한두 달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서 딸의 불만은 점점 시기와 질투로, 그리고 급기야 증오로 변해 동거 자살이라는 끔직한 일을 저질러 버린 것이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성희’가 세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간 결과를 불러온 것이다.
헌데, 최근 일본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 세인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동시에 20대의 새파란 청년과 불륜을 저질렀다가 황천길로 가버린 것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공개가 되지 않았을 뿐이지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오늘도 수없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세상이 뒤숭숭하고 경기침체가 계속되면 더 더욱 심해진다.
때문에 자매가 한 남성을 섬긴다든가 아니면 형제가 한 여인을 사랑하는 경우는 다반사이다.

얼마 전 모 주간지에 보도된 기사를 보면,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간통하는 현장이 시어머니에게 발각됐지만, 너무나 창피하고 부끄러워 쉬쉬하면서 숨겼다고 한다.

헌데, 그 파렴치한 시아버지는 부인이 묵인해준 줄만 알고 마음 놓고 매일 밤 며느리의 방으로 들어가 신나게 떡방아를 찧었다고 한다. 이는 아들이 장기출장으로 집을 비웠기 때문에 ‘불륜’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꼬리가 길면 문제가 생기는 법. 남편도 없는 며느리가 덜커덕 임신을 해버린 것이다.

남편이 없어 적적했던 차에 ‘물건’의 강도는 좀 떨어지지만 테크닉이 훨씬 좋은 시아버지의 손놀림에 피임도 잊고 놀아났던 며느리는 그만 기절초풍해 버린 것이다.

이들의 결말 또한 비극으로 끝난 것은 기정사실이다.

결국 ‘성’이란 올바로 쓰지 않는 한 남녀 불문하고 불행으로 끝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성욕’은 누구나 항상 갖고 있지만, 그 씀씀이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우리는 필히 깨달아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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