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이야기거리를 잘 만들어내는 재간꾼들의 머리는 정말로 좋은 것 같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오만가지 말들을 지어내니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런 이야기거리를 한 친구가 물어온 적이 있었다.

즉 노인의 ‘5복’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필자는 대답할 자신이 없어 모른다고 했다. 이 친구는 웃으면서 남자들은 적어도 60세가 넘으면 이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핀잔을 주었다.

그 내용을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즉, 할아버지의 5복은 ‘건강, 돈, 친구 그리고 아들과 할머니’인데, 할머니는 ‘건강, 돈, 친구’는 할아버지와 같았지만, 그 다음은 아들이 아니고 딸이었으며 마지막 하나는 놀랍게도 할아버지가 없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늙어서까지 남편 시중드는 것이 귀찮다는 뜻이다.

참 충격적인 말이다. 반평생을 함께 산 남편이 이제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전락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물론 황혼 이혼이 늘어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렇다면 남자들이 무엇을 그리 많이 잘못했기에 늙어서 수모를 당하는 것일까.

사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가부장적인 가정이 많다. 그래서 조용히 살던 여인들이 남편이 힘을 못 쓰는 때를 기다려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이혼을 당한 68세의 한 노인은 뒤늦게 후회를 했지만 이미 ‘물 건너 간’ 일이었다. 집과 재산을 반 이상 빼앗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연금도 반이나 빼앗겼으니 너무나 허무한 것이었다.

그렇다.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황혼 이혼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남편들의 권위적인 행동 때문이다.

반면 ‘성’적으로도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의 부부들은 너나없이 늙을수록 함께 있기를 원한다. 서로 위로가 되고 이불 속에서 체온도 높여주니 금상첨화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5복’은 남녀가 똑같다. 젊어서부터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아끼고 살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어디 그뿐인가. 이들의 ‘성생활’ 또한 상대를 존중, 함께 만족을 얻으려고 노력하면서 부인을 최대로 배려한다. 그러니 70세가 넘어서도 애무를 하고 사랑놀이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노인들은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한마디로, 신혼 초부터 너무 일방적인 ‘성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많이 달라지고 상대를 배려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아직도 선진화되기는 요원한 것 같다.

우습게도 우리나라의 부부들은 대부분 상대가 흥분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오르가슴에 도달하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물어보지를 못한다.

그러니 너나없이 주먹구구식인 눈치로, ‘옹달샘’에 샘물이 좀 고이면 흥분을 했구나하고 또 마누라가 밑에서 궁둥이를 흔들면서 앓는 소리를 하면 아 이제 절정에 달하고 있구나 하면서 ‘사정’을 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진정한 ‘성교’는 솔직하게 상대의 상태를 물어가면서 애무도 하고 떡방아도 찧는 것이다. 그래야 선진국의 부부처럼 오르가슴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노인들이 젊어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너무 가부장 적이었으니 늙어서 구박을 받고 외면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필귀정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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