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발주 둘러싼 전문시공업체-건설업체 입장 정리

올해 초 대한건설협회가 단기적으로는 분리발주제도를 폐지하고 장기적으로는 전기공사업, 정보통신공사업 등을 건설업에 편입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건설산업의 당면과제'라는 제목의 건의문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제출해 전문시공업계의 심한 반발을 산 적이 있다.
당시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는 분리발주제도 존치 및 정보통신공사업의 건설업 편입 반대를 골자로 하는 의견서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제출했고, 한국전기공사협회도 분리발주제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나서는 등 생존권 수호 차원에서 강력한 대응에 나섰었다.
그런데 지난달 국회사무처 법제실에서 대한건설협회가 제출한 의견만을 반영해 분리발주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현행법령 개정과제'란 보고서를 작성,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의원들에게 참고자료로 배부한 사실이 드러나 또다시 전문시공업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 보고서는 국회에 제출된 각종 민원과 언론 매체에서 제기한 법령 및 제도개선 요망 사항을 담은 것으로, 분리발주제는 하자발생시 책임소재 불분명, 공사비용 증가 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이를 점차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반면 이에 앞서 전기공사협회에서는 전기공사의 분리발주에 관한 홍보물을 제작, 홈페이지 등을 통해 배포하는 등 건설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통합발주 주장을 불식시키고 분리발주제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벌이고 있어 대조를 보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전문시공업계에서는 관련협회에서 분리발주에 대한 국회 및 정부에 대한 대외홍보와 의견 건의가 건설협회에 비해 부족한 것 아니냐며 협회차원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는 견해도 대두되고 있다.
매년 되풀이 되고 있는 분리발주제 논란과 관련해 건설업계, 전문시공업계 양측의 주장을 국회사무처 법제실의 '현행법령 개정과제' 보고서와 전기공사협회의 홍보책자를 중심으로 요약 정리해봤다.

▲전기공사업계 "반드시 존속돼야"

한국전기공사협회는 우선 홍보물에서 "전기공사를 분리발주하면 전기설비의 품질이 보장돼 발주자가 만족할 수 있다"고 밝혔고, 또 "전문업체가 직접 시공하기 때문에 책임시공이 가능하며 공사비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됐는지 투명하게 알 수 있다"며 분리발주제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함께 "통합발주는 전기설비의 부실시공과 안전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며 "분리발주제도가 폐지되면 전기공사업을 겸하고 있는 640여 건설업체를 제외한 1만1,000여 전기공사업체가 입찰참여 기회를 원천적으로 잃게 돼 하도급업체로 전락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협회는 이 경우 "실제 하도급액이 원도급 금액의 43∼60%에 불과한 현실에서 전기설비의 품질과 안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홍보물의 주요 내용.

△통합발주, 부실의 원인
건설·전기·정보통신공사를 각각 분리발주 하지 않으면 시설물의 성능 및 품질 저하, 불공정한 하도급 등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이 경우 전기설비의 품질을 보장할 수 없어 발주자가 희망하는 품질의 전기설비를 완성할 수 없게 된다. 아울러 실제 시공자가 다르기 때문에 시공책임의 소재를 알기 어렵게 된다. 또한 발주자가 지불한 공사비가 과연 제대로 투입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게 된다.

△전기설비, 건축물의 부속물 아니다
건축물을 사람에 비유한다면 몸통과 뼈대에 해당한다. 반면 여러 가지 기능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전기설비는 인체의 신경에 해당한다. 즉 전기설비는 각각의 설비가 독립된 역할을 하며 전체가 하나의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다.
건축물과 전기설비의 수명이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항상 가동되는 전기설비는 수명이 짧아 평상시의 유지·보수가 매우 중요하다.

△분리발주, 유지관리 비용 절감
하나의 건축물을 신축해 유지하는 비용을 산출했을때 초기 신축비용은 17%에 불과하다. 반면 건축물의 유지·관리에는 83%가 소요된다. 전기설비를 분리발주하면 전기공사업체에 의한 설계·시공·유지관리의 전문화가 가능해 유지관리 비용을 크게 절감시킬 수 있다.

△분리발주, 국가경제 발전의 토대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산업발전의 원동력인 전기의 원활한 공급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고품질의 전기설비를 생산할 수 있는 시공능력은 국가경쟁력의 기초가 된다.
분리발주의 폐지는 전력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동시에 전기공사의 학문적 토대인 전기공학의 붕괴를 초래하게 된다.

△업체간 책임한계, 통합발주 명분될 수 없어
건설의 하자는 시설물의 뒤틀림, 침하 등에 따른 구조적 결함을 의미한다. 반면 전기설비의 결함은 과부하, 단선, 결선 등의 원인으로 발생한다. 즉 시설물에 나타나는 하자는 분야별로 명확하게 나타나며 분리발주와는 관련이 없다.
또 공사계약을 체결할 때 작성하는 표준계약서에는 처음부터 건설과 전기공사에 대한 작업범위 및 공정, 책임한계 등의 명확하게 설정돼 있다. 따라서 건설업체와 전기공사업체가 책임한계를 갖고서 다투는 것은 미흡한 설계, 잦은 설계 변경, 계약사항 불이행, 불법하도급 때문이며 분리발주와는 상관이 없다.
결론적으로 정상적으로 계약을 체결해 공사를 시행하게 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분리발주는 시공품질 향상과 안전 확보에 도움을 준다.

△건설·전기공사업자간 협력이 중요
일각에서는 분리발주를 하면 건설업체와 전기공사업체의 공정계획 조정이 어렵고 공기가 지연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정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은 발주자의 관리능력 부족과 비현실적인 공사진행에 기인한다. 또 부실한 설계 및 감리, 불법하도급 등도 원활한 공정 조정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이와 함께 건설업자의 비합리적인 공정 관리와 다른 업역의 업체와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요컨대 분리발주가 공정계획의 조정을 어렵게 한다는 주장에는 설득력이 없으며 건설 및 전기공사업자가 대등한 주체로서 협력해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선진국도 분리발주 채택 = 미국과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대부분 분리발주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뉴욕과 오하이오 주 등 11개 주에서 분리발주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일본도 시공품질 확보와 중소기업 보호 차원에서 관련법에 분리발주를 명시하고 있다. 또 프랑스는 공공공사의 투명성 확보 방안으로 분리발주를 선호하고 있다.

▲건설업계 "당장 폐지해야"

국회사무처 법제실이 작성한 '현행법령 개정과제' 보고서는 대한건설협회에서 제출한 의견을 일방적으로 담고 있다. 이 보고서 법률개정과제 중 건설교통위원회 소관 부분에서 언급된 '전기 및 정보통신공사 분리발주 의무 폐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집행현황 및 문제점
전기공사업법 제11조 및 정보통신공사업법 제25조에 의하면, 전기공사와 정보통신공사는 건설산업기본법에 의한 건설공사 등 다른 공사와 분리해 발주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전기 및 정보통신공사업은 표준산업분류상 건설업에 포함되고 산업적 속성이 동일함에도 실제 대부분의 동일구조물공사에서 전기 및 정보통신공사는 토목·건축 등 주된 공사와 분리 발주되고 있다.
전체공사를 종합적으로 관리·조정하는 주체 없이 하나의 공사에 공사종류별 각기 다른 시공자가 참여해 시공자 상호간에 시공 연계성이 부족하게 되고, 공사가 지연되거나 재시공을 하게 되는 등으로 인해 공사비가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시공자간 책임한계가 불분명해 하자발생시 상호 책임을 전가하는 등의 하자보수분쟁 및 발주자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분리발주는 업무중복으로 행정비용을 증가시키고, 예산낭비 및 발주자 선택권의 제약으로 인한 비효율성을 초래하며, 공종별 설계서 내용에 대한 상호간의 유기적 검토가 미비해 설계서상의 불일치가 사후 발견됨으로써 설계변경에 따른 비효율과 공사품질 확보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개선사항
따라서 입찰공고, 신청서 접수, 현장설명, 입찰 및 계약 등의 업무중복으로 인한 간접비용의 증가를 방지하고, 특히 기술인력 부족으로 감독능력이 불충분한 발주기관의 공사관리에 있어서의 비효율성을 시정하기 위해 전기공사 및 정보통신공사의 분리발주 의무제도폐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산업자원부는 오히려 지난해 1월 전기공사업법 개정시 분리발주위반에 대해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조항을 신설했고, 같은해 4월 동법시행령 개정시 분리발주의 예외사유축소를 추진했으나, 건설교통부 등 관련부처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이는 건설업체와 타 공사업체간의 이해가 대립되는 상황에서 산업자원부에서 전기 및 정보통신공사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취지로 보여지나, 공사의 효율성 등을 고려하여 볼 때 전기공사업법 제11조 및 정보통신공사업법 제25조를 삭제해 분리발주 의무제도 폐지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정보통신공사업계 "분리발주는 공익적 기능"

한편 정보통신공사협회 역시 지속적으로 분리발주제의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보통신공사협회에서는 정보통신공사의 다양성 및 복합성과 관련, 정보통신설비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려면 통합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돼 유기적으로 작동되도록 시공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분리발주제도는 정보통신공사의 전문성 확보에 의한 국가 경쟁력 강화는 물론, 공익의 극대화, 기회의 균등한 제공이라는 제도적 우수성을 감안할 때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분리발주, 공익적 순기능 수행
협회는 분리발주제도의 존치 필요성과 관련, 건설공사와 분리해 정보통신공사를 발주함으로써 전문성을 갖춘 업체에 의한 시공이 가능하게 되며 이로 인해 정보통신설비의 시공품질 확보가 가능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통합발주시 정보통신분야의 시공기술 및 인력의 부족 등으로 건설업체는 정보통신전문업체에게 하도급을 줄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일정비율은 건설업체의 이윤으로 돌아가 궁극적으로는 적정 공사비가 부족해지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통합발주의 경우 대형건설업체만이 입찰 참여 자격을 획득할 수 있으나 분리발주를 통하면 대다수가 중소기업인 정보통신공사업체가 단독으로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돼 하도급 단계에서 건설업체가 갖게 되는 불필요한 마진이 정보통신공사업체에 돌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건설업 편입 주장 '어불성설'
협회는 정보통신공사업의 건설업 편입주장에 대해 정보통신·전기·소방공사업 등은 건설과 마찬가지로 국가계약법에서 시설공사로 분류돼 공사입찰·계약 등에 관한 법령이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건설업의 특성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지만 시설물에 관련된 모든 것을 건설로 보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 이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정보통신설비가 첨단화 다양화돼 가고 있는 시점에서 정보통신공사를 건설공사의 범위에 포함시킬 경우,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을 요하게 되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함은 물론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경우 국가의 정보통신정책과 괴리된 정보통신공사 관련 제도가 시행되는 모순이 발생함은 물론 등록권한은 정보통신부가, 공사업 경영에 관한 사항은 건설교통부가 이중적으로 관여하게 되는 행정 및 인력의 낭비 현상이 초래될 것이라는 게 협회의 주장이다.

저작권자 © 한국전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