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강남지점 무정전 배전공사 현장을 찾아

태풍 등 자연재해가 예고되면, 누구보다도 마음을 졸이며 24시간 대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앙재해대책본부를 말하는 건가”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처럼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그들 못지 않은 땀과 노력으로 재해 예방과 복구에 노력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그 중에서도 배전 정전사고에 대비한 한전 사업소와 그 협력업체들은 국가 기간 산업인 전력산업의 최전선에서, 큰 조명을 받지는 못하지만, 묵묵히 관내의 전력설비를 순찰하고 복구하는 작업을 시행하고 있다.

본지는 한전 강남지점의 협조로 무정전 배전공사 현장을 찾아 전기공사 업체와 전공들의 작업을 밀착 취재하고, 그들의 애환을 들어봤다.


무정전 배전공사의 현장을 찾은 때는 14일 오전 10시경. 전날 온 비의 영향으로 하늘은 아직도 흐려있었다. 이런 날씨가 전기공사에는 가장 부적절한 날씨라고 한다. 아예 비가 온다면 긴급상황을 제외하고는 공사를 연기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고 공기가 습기를 머금고 있을 때면 스파크에 의한 사고나 감전 등이 자주 일어나고는 한다는 것이다.

동행해 준 한전 강남지점 이기열 배전운영과장의 안내로 현장에 도착해보니 이미 공사는 시작했다. 강남구 논현동 265번지에서 진행된 이 공사는 다세대주택이 신축되며 전력수요가 늘어난 것에 대응해 50kW 변압기 3대를 같은 수의 75kW용량의 변압기로 교체하는 무정전 활선작업.

특별한 어려움이 없는 평이한 작업이라는 이기열 과장의 설명이었지만, 현장에는 오버크레인차량과 절연바켓트럭(활선작업차) 2대, 이동변압기차와 자재운반차량까지 5대의 트럭이 촘촘히 자리하고 있었고, 현장에 투입된 인원만 10명이 넘었다.

다행히 오늘의 공사 현장은 길이 넓은 편이라 차량을 완전히 통제하지 않아도 됐으나, 좁은 골목길의 경우에는 양방향 차량을 통제했을 때 엄청난 민원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번 공사를 담당한 협력업체는 (주)대건전설(대표 이경우)로 강남지점의 5개 협력업체 중 하나로 논현동, 신사동, 삼성동 등 7개 동을 커버하고 있다. 1996년 창립돼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무정전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대건전설의 이경우 대표는 대한민국의 최고 부촌인 강남구에서 작업하는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오늘같이 차량도 소통되고 간단한 작업이라면 큰 문제는 없지만, 전주를 신설하거나 도로를 막게되면 각종 민원들이 제기됩니다. 또 강남구가 어떤 곳입니까? 배전공사는 민원과의 싸움이라 해도 과한 말은 아니죠.”

이경우 대표와의 대화 도중에도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돼갔다. 우선 이동변압기차에 저압선을 연결하고 COS(개폐기)를 개방해 연결하면 기존 변압기는 멈추고, 이동변압기를 통해 전기가 변환 공급돼 무정전공사의 기본 요건이 갖춰진다. 그 이후에 2차 리드선을 절단하고, 새로운 변압기를 설치해 전기를 그 쪽으로 보내면 공사는 완료된다.

오늘 공사를 관장하는 대건전설의 윤길중 전공장(48세)은 27년 경력의 베테랑 전공이다. 그에게 과거 전기공사는 어땠냐는 질문을 해봤다.

“예전엔 힘들었죠. 죽은 사람도 많아요. 내 동기 중에도 몇 명이나 죽었고 내 앞에서 사고를 당한 사람도 있어요. 그런 때마다 며칠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요. 지금은 사고가 거의 없어졌어요. 그만큼 교육도 철저해지고, 현장의 안전성도 강화됐으니까요. 대신 작업 자체가 어려워지고 복잡해져서 몸은 힘이 덜 들어도 머리가 아파요”

중년의 윤 전공장은 현장에서 무엇보다도 안전을 강조한다고 한다. 다치면 자신만 손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 해 최근 몇년동안은 대건전설의 현장에서는 무사고를 이어가고 있다고 전한다.

그는 또 “현장에 젊은 사람들이 너무 없어요. 이 직업이 해볼만한 직업인데 난 내 자식이 전공을 하겠다면 말리지 않고 오히려 권할 생각이에요. 위험하고 힘들어도 경제적으로 다른 직업에 비해 떨어질 게 없고, 무엇보다도 특수 전문직이잖아요.”라고 청년층의 전기공사업 기피 현상을 안타까워했다.

배전공사를 할 때의 또 다른 어려운 점은 얼기설기 얽혀 도저히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돼 있는 통신선이라고 현장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번 공사가 진행된 전주에도 여러 초고속 인터넷회사의 통신선들이 얽혀 미관상 뿐만 아니라 공사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었다.

대건전설의 김우덕 부장은 “규정대로 통신선을 설치한 게 저 정도입니다. 더욱이 몰래 설치하는 통신선들도 있는데 그것들은 우리가 제거해야 합니다만 제거했을 때 일반 가정들이 겪게 되는 불편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바켓이 통신선에 걸리는 위험한 장면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전기공사를 어렵게 하는 요인들은 제거돼야 마땅하다. 특히 통신선 가설 규정을 강화해 도시의 흉물이 되어 가는 전주를 보호하고, 전공의 안전도 보장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변압기가 크레인에 실려 연결되고, 이동변압기차량의 전원이 꺼지면서 공사의 대부분이 완료됐다. 이제 남은 절연피복을 벗겨내고 현장을 정리하면 2시간여 진행된 공사는 마무리된다.

바쁜 일정에도 취재에 동행·협조해 준 이기열 배전운영과장은 “사실 사업소에 취재를 하러 온다 그러면 겁부터 납니다. 우리가 무슨 책잡힐 일을 했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죠. 요즘 한전에 대한 언론의 시선이 그리 곱지 않은 것이 사실 아닙니까. 하지만 현장에서는 각종 공사로 정신이 없습니다. 여하튼 오늘 본 대로 객관적으로 써 주시길 바랍니다”는 부탁을 했다.

하지만 그런 부탁은 하지 않아도 좋았다. 어느 누가 국가 기반 산업인 전력산업의 최전방에서 분투하며 청춘을 다 보낸 이 전공들에게 비난을 할 수 있으랴. 만약 그들에게 돌을 던지려는 사람이 있다면 현장에서 그들과 단 하루만이라도 같이 있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리 작업환경이 개선됐다 하더라도 전기를 만지는 작업은 언제나 생명을 빼앗길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무정전을 위해 매일매일 위험에 접하길 주저 않는 이 전공들과 함께 한다면 전기업종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변화가 있으리라 감히 예상해본다.

양현석 기자 kautsky@e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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